2015 마을기록수집가 양성과정; 기록농사, 첫 번째 이야기 ‘갈무리 하는 날’
2015.11.05 꿈이자라는뜰 보루
3주전, 서천특수교육지원센터가 마련한 자리에서 서천지역 학부모들과 장애와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아주 가끔 장애와 농업의 연결에 대해 특수교사 또는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다. 처음엔 꿈이자라는뜰을 만들었던 이야기, 장애와 농업 그리고 마을이 연결되는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마지막엔 꼭 회복탄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농사를 짓는 것이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고, 직업과 자립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농사를 지으면서 쌓이는 추억과 돈독하게 다져지는 관계다. 교육적인 농사, 돈버는 농사를 고민하는 것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하게 보낼지 고민해야한다. 직업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풍성한 추억을 어떻게 저장하고, 추스리고, 다시 꺼내 먹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게 관찰일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무언가를 더 잘 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언가를 잘 못하고 있을 때 그 시간을 버텨낼 힘을 차곡차곡 키우도록 돕는게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 부분이 더욱 절실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열심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만큼, 열띤 피드백과 토론을 기대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이번에는 아버님 두분에게 일부러 어떠셨는지 챙겨 물어볼 여유가 있었다. 이제까지 한번도 딸과 농사를 지어볼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텃밭농사를 함께 지어볼 생각을 하셨단다. 다행이다. 혼자만 신나서 떠든게 아니었나보다.
서천센터와 연결해주신 윤선생님의 차를 얻어타고 기차역으로 오면서, 선생님의 이야길 전해들었다. 최근에 진로지도중에 부모님과 갈등을 겪으셨단다. 과정이나 의도가 참작될 만한 여지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진로지도 결과만 두고 제법 무거운 말을 들으셨던 것 같다. 요즘 선생님들은 부모님들과 서로를 이해할 만한 넉넉한 시간, 신뢰할 만한 충분한 경험을 가질 여유가 없는 편이다. 이건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 구조적으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결국 그동안 애쓰고 수고한 일들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라고 자문을 하셨단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함께 고구마캐고 웃을 때는 정말 좋았는데...라고 말을 이으셨다. 그렇다. 안타깝게도 이 못난 구조를 당장에 어찌 고쳐낼 바가 없으니, 다만 그동안 아이들과 지냈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내시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오늘 이야기중에 일이 힘들어 질 때 그 시간을 버텨낼 힘, 막혀 있을 때 그 벽을 뚫고 나갈 힘을 평소에 마련해두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고 말해주셨다. 다행이다. 혼자만 신나서 떠든게 아니었나보다. 윤선생님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고맙다.
집에 돌아왔더니, 미국에 사는 친구가 오랜만에 메신저로 인사를 건네왔다. 서천에 다녀온 이야기를 페북에 적었더니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했다. 이 친구의 아이는 자폐 성향이 있다고 한다. 아직 다른 친구들에겐 터놓지 않은 이야기다. 나 역시 내 이야기가 부모의 입장에서 어떻게 들릴까, 너무 이상적인 먼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을까 항상 궁금해왔던 터라 친구의 피드백이 궁금했다. 간단하게 요점을 말해주었다.
‘농사를 짓더라도; 돈버는 농사, 기능 기술을 익히는 농사 보다; 정서를 풍성하게 하고,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시간을 더 갖자_ 이렇게 우선순위를 바꿔보자고 이야기하는데, 그럼 밥은 어떻게 벌어먹고 사냐고 되물으신다. ... 자폐의 경우, 30대가 넘어가서 우울증을 겪는 일이 많다고 하네. 그래서 내 지론은 어릴 때, 젊을 때; 일찍부터 나름의 방법으로 좋은 기억을 쌓고, 단단한 관계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 두어야, 후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회복탄력성. resilence라고 상황이 좋지 않을 때;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게 하는 힘(그 힘을 미리 키워두어야지). 자폐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추억을 쌓고, 내면의 힘을 기르는 방식이 있겠지. 그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게, 눈에 보이는 장애를 기능과 기술로 극복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 뭐 그런 이야기.’를 했어. 친구가 대답해주었다. ‘우리 아이가 또래 애들하고 어울리고 싶은데 전혀 못하는 것에 대해 실망이 있어. (하지만) 우리도 남이 보기에 좀 그렇게 보일 정도로 애기를 오냐오냐 키우고 있지... 그게 적어도 우리 부모가 믿기에 부모와 유쾌한 기억이 우리 아기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거든. 매우 매우 동의해. (그리고) 그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부모의 몫 그리고 교사의 몫이겠지. 단어 하나 더 배우는 것 보다(말이야).’다행이다. 혼자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니 안심이 된다.
홍동에 내려오기 전, 서울에서 지낼 때,발달장애청년을 위한 교회모임에 4년간 다닌 적이 있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예배모임도 함께 하고, 이런 저런 활동을 같이 했었다. 여름겨울이면 2박 3일씩 여행을 같이 가기도 했다. 사회 초년생시절 첫 직장을 무사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일요일마다 만나던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따뜻한 지지와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한다. 물론 당시의 인연은 지금 여기 꿈이자라는뜰을 시작한 가장 굵은 계기이기도 하다. 그때 그시절 함께 청년들을 만나고 돌보았던 올드멤버들 네 분이 지난 수요일 홍동을 찾아왔다. 그 중 한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년의 공백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우리는 짧은 시간 많이 웃고 떠들고 신나했다. 이렇게 먼 길을 찾아와 다시 만나려고 애쓰는 것도, 함께 보냈던 시간을 되새기며 행복해 하는 것도 실은 모두 아주 오래전의 인연, 그 때 그시절 진하게 공유했던 시간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정작 그들 덕분에 일상을 유지하는 힘을 얻었으니 오히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셈이었다.
일상을 움직이는 힘. 더 잘하게 만들거나, 어쨌든 버티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람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혼자라는 느낌에 외로움에 떨고, 내가 가는 길이 맞나 틀리나 불안감에 흔들린다. 그럴때 말을 하면 좋다. 혼자 하는 독백보다, 사람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다. 삶의 궤적을 공유하는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자기말로 받아주고 하다 보면 외로움과 불안감은 조용히 사라진다.
마을기록수집가 양성과정을 진행하면서, 꿈이자라는뜰 이야기와 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제법 깊이 나누었더랬다. 동료들과 그저 이야기를 진하게 나누는 것만으로도 나는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매주 목요일 수업이 끝나고 이영남 선생님을 배웅하는 길 또한 잊을 수 없는 시간이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한 번에 하나씩 여러 종류의 맥주들을 섭렵하면서, 짧은 시간동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지만 경청해주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짧은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심심한 위로와 추억으로 기억속에 분명하게 남아있다.
마을기록수집가 양성과정을 시작하고 꿈뜰의 기록들을 추스린다고 했을 때, 이 작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랬다. 기록을 잘 정리해놓으면, 누군가 꿈뜰처럼 장애와 농업을 연결시키는 일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과정을 진행할수록 다른 이들보다 먼저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꿈이자라는뜰에게도 어려운 시간이 올 것이다. 그 시간들을 버텨내려면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 언제든 꺼내먹을 수 있는 기록들이 기록상자안에 빼곡히 저장되어 있다면, 설령 그 시간들이 아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이 된다 할지라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큰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텃밭농사만큼 기록농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단단해 진 것 역시 이번 마을기록수집가 양성과정에서 얻은 큰 열매다. 텃밭일지를 펴내고, 관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참말로 신기한 우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보여줄만한 아카이브를 아직 다 정리해내진 못했지만, 아카이빙 작업의 방향을 정했고, 할 일의 목록을 챙겼다. 동무를 얻었고, 위로를 받았고,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일상이 바쁘다보니 수업 준비를 제대로 못해왔고, 정작 소중한 시간을 지지부진하게 흘려보냈던 것에 대해선 선생님과 동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가까이에 살면서 과정과 결과와 또 다른 시작들을 또한 함께 이야기 할 것 이기에 뻔뻔하지 않을 만큼만 미안해하기로 하자. 서로 기대어서, 서로 기대하면서 오래오래 잘 살고싶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