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마을이 함께 키워요!

_발달장애청소년을 위한 교육농장, 꿈이자라는뜰. 보루



"선생님, 사람이 같이 오래 있으면요, 서로의 마음을 알 수가 있대요.“

2012년 5월의 어느 날, 카모마일 꽃 수확하는 일을 함께 하던 호수가 저에게 해준 이야기랍니다. 건너 편에선 민수와 기선샘이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한창 피우고 있었지요. 물론 두 손은 바쁘게 꽃 따는 일을 하면서요. 참 보기 좋았습니다. 마을이라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 안에서 이렇게 우리 아이들과 가까이 그리고 아주 오래동안 함께 머무를 수 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함께 지낸 시간이 올 해로 벌써 8년이 되었네요.


꿈이자라는뜰은 “우리 아이들도 농사를 짓고 살면 좋겠다”는 단순하지만 오래 묵은 바람에서 시작했습니다. 도시나 농촌이나 발달장애인이 일을 하며 사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2009년 홍동초등학교, 홍동중학교에서 특수교사로 근무하시던 선생님 두 분은, 가까운 마을에 살고 있는 당신의 제자들이 대부분 백수로 지내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리셨답니다. 바리스타 일도 좋고, 공장 일도 좋지만 우리가 사는 농촌엔 그런 일자리가 워낙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우리 마을에서, 농사 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진로 준비라고 생각하셨지요.

선생님들은 장애학생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에 오랜 연륜을 가지고 계셨지만, 농사까지 함께 짓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게다가 학교 안에서 농사를 지으면, 시작은 편하지만 언젠가 전근도 가셔야 하고, 학교장이나 예산이 바뀌어 갑자기 모든 일이 도루묵이 될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학교 밖에 농장을 마련하고, 마을 주민교사와 함께 꿈이자라는뜰을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 때부터 합류해서 특수교사와 마을교사 사이에서 다리 역할도 하고, 농장 살림도 꾸리고, 아이들과 농사 짓는 일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는 자연과 연결되어 생명을 돌보고 도구를 다루는 일이지요. 끊임없이 눈, 귀, 코, 입, 살갗 오감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해서 일해야 합니다. 손, 발, 몸을 때로는 힘있게, 때로는 정교하게 움직여서 일해야 합니다. 스스로 알아서 일 하거나, 지시를 따르거나, 여럿이 어울려 대화하며 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잘 해야 하는 일, 돈 버는 일로 생각하면 장애와 농사는 도무지 연결이 되질 않습니다. 농사는 가뜩이나 수익성이 낮은데다, 장애라면 더더욱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농사를 배움과 자극의 과정으로 바꿔 생각하면 농사만큼 다양한 배움과 풍성한 자극이 또 없습니다.

꿈이자라는뜰도 처음엔 농사기술을 익히는 직업교육과정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농사를 짓는 일이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매우 유익한 전인적인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설령 나중에 농사를 직업으로 가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함께 농사를 지었던 시간들은 또 다른 어떤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삶의 기술을 익히는 데 더없이 훌륭한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조금 느리고, 오래 걸릴 뿐이지요.

농사와 목공, 풍물을 가르치는 마을 주민교사들도 처음엔 발달장애청소년을 마주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그저 자기 일에 충실하고 아이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이었을뿐, 특수교육은 물론 따로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졌고 그게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농사 기술과 지식을 익히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서로가 연결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편안한 관계와 익숙한 공간에서 우리 아이들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농사를 익혔습니다. 어떻게 하면 배움이 깊어질지 고민하는 사이에 기록농사를 짓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직접 온 몸으로 부딛혀 일을 하고, 겪은 일을 글로 쓰고, 그림을 그리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지요. 한 해 동안 꾸준히 적은 텃밭일지는 학교 축제 전시에 당당히 선뵈였고, 우리들에겐 큰 자랑이 되었습니다. 


꿈이자라는뜰이 하고 싶은 일은 세가지입니다. 첫 번째 일은, 안정적인 배움터를 만드는 일입니다. 첫 해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는 일이고요, 작지만 안전하고 생태적인 농장을 가꾼지도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교육과정도 해마다 조금씩 다듬어서 다양한 배움과 풍성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성장하지만, 교사들도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고요, 무엇보다 특수교사와 마을샘 사이에 단단한 신뢰가 쌓여가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일은,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마을에 정착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마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배우고, 익히고, 관계 맺고, 자기 자리를 찾아, 제 몫의 일을 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수업 중에도 할 수 만 있다면 마을로 자주 나갔습니다. 일부러 들 길과 마을 길을 걸으며 인사를 하고, 누에농가와 딸기농가를 찾아 견학을 다녔습니다. 3년 전 부턴, 고등부 친구들이 마을 일터에 나가 일주일동안 견습시간을 갖는 활동도 시작하였습니다.

세 번째 일은, 꿈이자라는뜰 농장을 일터로 만드는 일입니다. 학교는 마쳤지만 아직 마을 일터와 연결되지 못했을 때 또는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되돌아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일주일에 나흘 오전을 새 일꾼과 함께 일하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한 달을 꾸준히 일하는 게 어려웠다는 친구가 한 해 농사를 함께 시작하고 끝까지 잘 마쳤답니다. 물론 도중에 일을 그만 두고 싶어 할 때도 있었고, 예상 밖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잘 견뎌냈습니다. 물론 올 해도 계속 함께 일할 예정이고요, 시간과 급여, 인원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아이들은 손톱처럼 자라납니다. 그저 나이가 들어 성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함께 농사를 지어 와서였는지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 아이들은 분명 조금씩 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마침 내일모레 고등부를 창업(졸업)하는 두 친구들에게 앨범을 만들어주려고 사진을 정리하는 중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사진을 고르며 한 장씩 넘겨보고 있자니 마음이 참 좋습니다.

작년 가을, 오후 햇살이 끝내주던 어느 날 꿈이자라는뜰 농장에서 정원음악회를 열었던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무대에 서고, 재주 있는 마을 주민들이 무대에 함께 섰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편하고,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자리한 이웃들로부터 그 날의 감동을 다시 전해 들었을 때, 다시 한번 꿈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초중고 12년 동안 우리 아이들,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할까요?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어떻게 하면 쌓을 수 있을까요? 힘겨운 시간이 왔을 때,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힘을 어떻게 채워 둘 수 있을까요?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마을에서 무슨 일을 하며, 또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재미와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계속 농사를 짓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연 얼마만큼 일하고, 얼마만큼 벌어야 적당한 것일까요? 해마다 조금씩 쌓이는 질문들은 어느새 숲을 이루었습니다. 질문의 숲이 울창해질수록 막막하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알아서 툭툭 떨어지는 열매들, 다시 꼬리를 물고 새로 싹트는 다음 질문들을 마주하는 기쁨이 이 일을 계속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꿈이자라는뜰을 함께 가꾸는 동료들 덕분에, 조용히 받쳐주고 응원해주는 마을 이웃들 덕분에 올 해는 또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내심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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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루는.

동네에서는 털보 또는 보루라고 불리우고요, 충남 홍성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에서 농사와 마을살이를 배우다가 그대로 눌러 앉았습니다. 논농사, 밭농사, 자식농사, 꿈뜰농사, 기록농사를 조금씩 짓고 살고 있습니다. www.greencarefarm.org


* 이 글은 <개똥이네집> 2016년 3월호에 게재한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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