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자라는뜰의 텃밭농사, 기록농사, 사람농사


꿈이자라는뜰 최문철, 2016.


꿈이자라는뜰 농장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꿈이자라는뜰 농장에는 가까운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발달장애 학생들이 매주 찾아와 함께 텃밭농사를 짓습니다. 지난 6월 29일, 중등 텃밭교실 이야기입니다. 관찰그림을 그려 보자고 하면, 언제나 자기가 좋아하는 상상 속 애니메이션 캐릭터만 그려내던 혁이가 오늘은 자기 텃밭 앞에 오래 앉아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놀랄 일인데, 자기 텃밭에 심어놓은 금잔화를 꼼꼼하게 그려낸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텃밭활동을 살피고 돌아와 보니 멋지게 색칠까지 해서 마무리 했더라구요. 강렬하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을 보고 정말이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담당 특수교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자폐성향의 발달장애를 가진 혁이의 이런 모습은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었으니까요.

텃밭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 작물과 어울려 핀 꽃들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 어찌 보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꿈이자라는뜰은 이런 활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꿈뜰이 왜 관찰그림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꿈이자라는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혁이를 처음 만난 것은 혁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0년, 꿈이자라는뜰 텃밭교실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해였습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좋아하던 혁이의 앳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꿈이자라는뜰은 홍동초등학교, 홍동중학교, 풀무고등학교에 다니는 발달장애학생들이 농사를 직업으로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초중고 12년 동안 꾸준히 농사를 짓다보면, 느리고 오래 걸리는 우리 아이들도 여기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래서 2009년 가을, 초중고등학교가 공동으로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위한 직업교육과정>을 시작하였답니다.


이 과정을 처음 생각해 낸 초,중학교 특수교사 선생님 두 분은 이 과정이 최대한 오래 지속되고, 제대로 진행되려면 학교 울타리를 넘어 마을과 연결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초중고는 물론이고, 장애와 관련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넓은 준비모임을 꾸리셨지요. 준비모임도 같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학교장이 바뀌어도, 특수교사가 바뀌어도, 예산과 정책이 바뀌어도 이 교육과정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으려면, 일을 맡을 사람이나 농장을 모두 학교 밖에서 그리고 마을 안에서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마침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과정(풀무전공부) 창업(졸업)을 앞둔 제가 인연이 닿았고,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풀무전공부에 입학할 즈음의 저의 개인적인 바람은 농사로 온전히 자립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10년쯤 지나 농장이 자리를 잡고 나면, 장애인, 노인, 이주민과 함께 농사를 짓는 기회를 만들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전공부 2년을 지내는 동안 혼자서는 도저히 농사로 자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도움을 받으며 살자, 주어진 일을 받아들이자, 혼자서 다 만들어 놓고 누군가를 초대할게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 농장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제 경우엔 그렇게 생각이 바뀐 덕분에 지금 여기에 안착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장애와 농사를 연결하는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비슷한 선례를 찾아보았지만, 장애든 비장애든 텃밭과 교육을 접목한 시도를 당시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장애인과 함께 농사를 짓는 농장만 두어군데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농사를 잘 모르는 특수교사와 장애를 잘 모르는 농부들은 우선 각자의 영역에 대해 서로 알려주고, 책을 찾아 같이 읽는 공부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달리 뾰족한 길이 없으니 일단 시작해서 몸으로 부딪혀 볼 수  밖에 없었고, 달마다 꾸준히 만나 수업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낯선 일 년을 보냈습니다.


꿈이자라는뜰의 텃밭농사; 몸과 마음과 관계를 이롭게 하는 농적 자극

꿈이자라는뜰의 텃밭교실을 처음 시작할 무렵엔, 어떻게 하면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농사기술을 가르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지만 농사가 직업교육을 넘어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매우 유익한 과정, 즉 전인적인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설령 나중에 농부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함께 농사를 지었던 시간들이 또 다른 어떤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삶의 기술을 익히는 데 더없이 훌륭한 자극을 채워주는 과정임을 알게 된 것이지요. 농사를 농업, 그러니까 직업과 산업으로서만 한정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꿈이자라는뜰의 텃밭농사는 전인교육으로서의 텃밭농사, 몸과 마음과 관계를 고루 이롭게 하는 텃밭농사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는 자연과 연결되어 생명을 돌보고 도구를 다루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눈, 귀, 코, 입, 살갗 오감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해서 일해야 합니다. 손, 발, 몸을 때로는 힘있게, 때로는 정교하게 움직여서 일해야 합니다. 스스로 알아서 일 하거나, 지시를 따르거나, 여럿이 어울려 대화하며 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잘 해야 하는 일, 돈 버는 일로 생각하면 장애와 농사는 도무지 맞질 않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생산성이나 수익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배움의 과정으로 바꿔 생각하면 농사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자극을 주는 일이 또 없었습니다.


사람의 몸, 오감과 근육은 자극에 반응합니다. 다양한 자극을 받으면 받을수록 감각과 근육의 기능은 조금씩 성장합니다. 반대로 꾸준히 이어지던 자극이 엷어지면 몸의 기능은 퇴화하기 시작합니다. 팔이 다쳤을 때, 깁스를 해서 오래 고정해 놓으면 있던 근육도 점점 사라집니다. 보청기를 끼면 귀는 ‘아직 들린다’는 자극을 받고 퇴화를 늦춘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자극이 만병통치약처럼 성장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무딘 몸일수록 다양한 농적 자극을 만나게 하고, 그중에서도 반응하는 자극을 찾아내는 노력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도 역시 자극에 반응합니다. 텃밭이 주는 자극, 농장의 분위기, 친구들의 눈빛과 선생님과의 대화에 마음은 반응합니다. “농업에 대한 애착은 입맛에서부터 시작해야지요. 의무감이나 머리가 아니라. 봄나물, 여름오디, 가을 메뚜기는 저절로 나는데다가 맛도 있고, 영양도 좋고 참 좋습니다.” 홍순명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마음 밭을 일구는 일이 텃밭을 일구는 일처럼 눈에 훤히 보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 어렵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텃밭이 줄 수 있는 자연스럽고 생생한 자극들, 편안하고 아름다운 농장의 분위기, 따뜻한 눈빛과 마음에 귀 기울이는 대화와 같은 좋은 자극들을 많이 주고받는 일, 그리고 그 자극이 내면으로 이어지도록 애쓰는 노력은 분명 정서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해를 지나오니, 아이들은 어느 덧 농장과 농사일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오래되고 편안한 관계와 익숙해진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열린 말문은 닫힐 줄을 모릅니다. 캐모마일 꽃을 수확하면서, 텃밭에 둘러앉아 김을 매면서, 한련화를 옮겨 심으면서 손은 손대로 일하느라, 입은 입대로 수다를 떠느라 바쁩니다. 평범한 일상의 말들이지만, 상담실 책상 앞에서 오고가는 말보다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졌고 그게 가장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농사 기술과 지식을 익히는 일이 필요하긴 하지만, 서로가 연결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농사’만큼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촘촘하게 이어줄 수 있는 것이 또 없는 것 같습니다.


장애와 농사의 연결을 고민하면서 우리는 교육과 치유, 자립의 가능성과 마을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텃밭농사엔 몸과 마음과 관계를 자극하고 확장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4~5년이 지났을 무렵,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많이 느리고 오래 걸린다는 점, 그에 비해 주어진 시간은 초중고 12년으로 정해져 있다는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함께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습니다.


꿈이자라는뜰의 기록농사; 기록을 일구어 마음 밭의 땅심을 키우는 일

배움의 과정에서 다양하고 생생한 농적 자극을 받는 것이 분명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 자극들이 내면으로 이어지게 만들고, 온전히 쌓이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농사를 짓되, 단순하게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배우는 법을 익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길이 바로 기록농사입니다. 텃밭 일을 마치면, 그늘 아래 앉아 함께 텃밭일지를 적습니다. 오늘 어떤 일을 했는지 일의 순서와 내용을 적고, 느낌을 살피고, 텃밭을 관찰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혁이의 금잔화 그림은 바로 이 과정에서 나온 열매였습니다.


초중고 12년 동안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할까요? 다양한 지식을 외워 머리 속에 쌓아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작은 지식이라도 스스로 만들어 내는 법을 익혀야 할까요? 답이 후자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데,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 잘 만들어진 교과과정 덕분에, 오히려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질 틈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책상이 아니라 텃밭에서라면,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인식의 확장을 위해 무언가 새로운 틈을 만들어 내기가 훨씬 더 수월하지 않을까요?


무언가 또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고 > 관심

자세히 그리고 오랫동안 들여다보기 > 관찰

서로가 이어진 관계를 살펴보고 > 관계

그 관계를 바탕으로 변화를 만들기 > 관여


기록농사의 핵심인 <관심/관찰/관계/관여>는 다름 아닌 배움의 과정입니다. 삶을 이어가려면 누구나 이 배움의 과정을 지속해야합니다. 실은 각각의 과정을 일일이 의식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배움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니까요. 그런데 굳이 이 과정을 쪼개서 살핀 이유는 바로 꿈이자라는뜰에서 함께 농사짓는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저마다 어려움에 부딪히는 단계들을 자세하게 짚어보고, 장애를 넘어 배움의 선순환이 시작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작은 텃밭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다양성과 변화의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자기 텃밭에 심어놓은 토마토를 자세히 들여다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지난주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작물이 시들었다면 흙이 말라있는지 만져 보게 하고, 작물과 물기는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면 언제 어떻게 물을 주는 것이 적절한 것이지 관여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콩알만했던 수박은 또 얼마나 자랐을까요? 수박의 크기를 자신이 아는 물체의 크기에 빗대어 적어보자고 합니다. 오백원짜리 동전만하다거나, 자기 주먹만 하다거나, 결국엔 친구 얼굴보다 더 커졌다고 자신의 말로 이야기하겠지요? 글자로 개념을 한정 짓기 이전에 텃밭을 통해 본연의 다양한 맛, 모양, 향, 색, 질감들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생생하게 느껴보고, 그 느낌을 몸에 새겨 둔다면 호기심, 다시 말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앞으론 훨씬 더 수월해 질 것이 분명합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텃밭, 스스로 돌볼만한 작은 텃밭에서 <관심/관찰/관계/관여>의 과정을 익히는 것은 인식의 확장을 위해 매우 유리한 시작입니다. 작은 텃밭에서 점차 자연과 생태계로, 나와 친구에서 시작해 학교와 마을 그리고 사회로 인식의 대상이 스스로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이 아무래도 바람직하겠지요. 인식의 대상과 깊이, 내용이 확장된다는 것은 바로 지적인 성장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과 삶의 기술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혁이가 금잔화를 꼼꼼하게 그려내는 모습에서 보여준 변화는 이런 의미에서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런 변화와 성장의 모습이 바로 꿈이자라는뜰이 기록농사를 통해 맺고 싶은 첫 번째 열매입니다. 


기록농사를 통해 맺고 싶은 두 번째 열매는 좋은 추억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날 때, 행복한 기억들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그 시간을 버티기가 쉬워집니다. 텃밭에서 일궈낸 작은 성공의 경험들, 예를 들면 텃밭에서 잘 키워서 집에 가져간 상추 때문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고기를 굽고 상추쌈을 싸먹었던 경험, 덕분에 정말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는 아빠의 칭찬, 이런 경험과 말들에는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이 들어 있습니다. 자이언티의 노래중에 '꺼내 먹어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런 가사가 나오지요.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 배고플 땐 이 노래를 아침 사과처럼 꺼내 먹어요“ 모든 체험이 다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체험은 기록을 통해, 자꾸 꺼내보고 돌이켜보는 되새김질을 통해, 이야기 하고 들려지는 것을 통해 경험으로 탈바꿈 됩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하지요? 농부의 말로 바꿔본다면 저는 ‘기록은 기억을 재배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과 텃밭농사를 지으며 오감을 일깨우고 인식을 확장하는 기회, 친구와 함께 다양하고 풍성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기록으로 변환하고, 저장하고, 꺼내먹는 법을 서로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농사를 짓는 일도, 직업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버틸 수 있는 힘을 평소에 키워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느리겠지만 스스로 남긴 기록들이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방법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 풀어야 할 큰 숙제입니다. 


꿈이자라는뜰의 사람농사;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돌보는 농부

농사를 통해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었고,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텃밭농사를 함께 지으며, 몸과 마음과 관계를 이롭게 하는 농적 자극을 맛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기록농사를 함께 지으며 마음밭을 일구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과 견디는 힘을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농부이자 마을교사로 지낸 지 어느덧 내년이면 10년째가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농사엔 충분히 그럴만한 의미와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텃밭농사와 기록농사를 통해 살아가는 힘을 일구어내는 숙제는, 실은 장애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제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남는 일이 여전히 어렵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농부의 고된 삶을 버텨내는 힘을 다름 아닌 농사를 통해 자급할 수 있다면, 기록농사를 통해 발견하고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오만하지 않으려고, 거짓말하지 않으려고 물어봅니다. 나의 농사는 나의 몸과 마음과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가? 앞으로 나아가는 힘과 견디는 힘을 스스로 공급하고 있는가? 농사의 의미와 가능성이 아무리 좋다한들,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내지 못하면 그게 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돌보는 농부로서, 아이들보다 한발짝 앞서가는 어른으로서 이 질문을 평생 품고 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기록은 우리의 힘. 여러분의 텃밭농사와 기록농사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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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는 털보 또는 보루라고 불리우고요, 충남 홍성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에서 농사와 마을살이를 배우다가 그대로 눌러 앉았습니다. 논농사, 밭농사, 자식농사, 기록농사를 조금씩 섞어짓고 살고 있습니다. www.greencarefarm.org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엮고, 소나무 출판사에서 2016년에 펴낸 책,
『귀농 길잡이 두 번째』에 실은 꿈이자라는뜰 이야기를 옮겨왔습니다. 
책에는 ‘발달장애아이들의 꿈이자라는뜰’이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 <2016 텃밭일지관찰그림전>에 전시한 작품중에 일부를 아래에 덧붙입니다.



아이들, 마을이 함께 키워요!

_발달장애청소년을 위한 교육농장, 꿈이자라는뜰. 보루



"선생님, 사람이 같이 오래 있으면요, 서로의 마음을 알 수가 있대요.“

2012년 5월의 어느 날, 카모마일 꽃 수확하는 일을 함께 하던 호수가 저에게 해준 이야기랍니다. 건너 편에선 민수와 기선샘이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한창 피우고 있었지요. 물론 두 손은 바쁘게 꽃 따는 일을 하면서요. 참 보기 좋았습니다. 마을이라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 안에서 이렇게 우리 아이들과 가까이 그리고 아주 오래동안 함께 머무를 수 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함께 지낸 시간이 올 해로 벌써 8년이 되었네요.


꿈이자라는뜰은 “우리 아이들도 농사를 짓고 살면 좋겠다”는 단순하지만 오래 묵은 바람에서 시작했습니다. 도시나 농촌이나 발달장애인이 일을 하며 사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2009년 홍동초등학교, 홍동중학교에서 특수교사로 근무하시던 선생님 두 분은, 가까운 마을에 살고 있는 당신의 제자들이 대부분 백수로 지내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리셨답니다. 바리스타 일도 좋고, 공장 일도 좋지만 우리가 사는 농촌엔 그런 일자리가 워낙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우리 마을에서, 농사 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진로 준비라고 생각하셨지요.

선생님들은 장애학생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에 오랜 연륜을 가지고 계셨지만, 농사까지 함께 짓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게다가 학교 안에서 농사를 지으면, 시작은 편하지만 언젠가 전근도 가셔야 하고, 학교장이나 예산이 바뀌어 갑자기 모든 일이 도루묵이 될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학교 밖에 농장을 마련하고, 마을 주민교사와 함께 꿈이자라는뜰을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 때부터 합류해서 특수교사와 마을교사 사이에서 다리 역할도 하고, 농장 살림도 꾸리고, 아이들과 농사 짓는 일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는 자연과 연결되어 생명을 돌보고 도구를 다루는 일이지요. 끊임없이 눈, 귀, 코, 입, 살갗 오감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해서 일해야 합니다. 손, 발, 몸을 때로는 힘있게, 때로는 정교하게 움직여서 일해야 합니다. 스스로 알아서 일 하거나, 지시를 따르거나, 여럿이 어울려 대화하며 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잘 해야 하는 일, 돈 버는 일로 생각하면 장애와 농사는 도무지 연결이 되질 않습니다. 농사는 가뜩이나 수익성이 낮은데다, 장애라면 더더욱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농사를 배움과 자극의 과정으로 바꿔 생각하면 농사만큼 다양한 배움과 풍성한 자극이 또 없습니다.

꿈이자라는뜰도 처음엔 농사기술을 익히는 직업교육과정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농사를 짓는 일이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매우 유익한 전인적인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설령 나중에 농사를 직업으로 가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함께 농사를 지었던 시간들은 또 다른 어떤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삶의 기술을 익히는 데 더없이 훌륭한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조금 느리고, 오래 걸릴 뿐이지요.

농사와 목공, 풍물을 가르치는 마을 주민교사들도 처음엔 발달장애청소년을 마주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그저 자기 일에 충실하고 아이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이었을뿐, 특수교육은 물론 따로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졌고 그게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농사 기술과 지식을 익히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서로가 연결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편안한 관계와 익숙한 공간에서 우리 아이들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농사를 익혔습니다. 어떻게 하면 배움이 깊어질지 고민하는 사이에 기록농사를 짓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직접 온 몸으로 부딛혀 일을 하고, 겪은 일을 글로 쓰고, 그림을 그리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지요. 한 해 동안 꾸준히 적은 텃밭일지는 학교 축제 전시에 당당히 선뵈였고, 우리들에겐 큰 자랑이 되었습니다. 


꿈이자라는뜰이 하고 싶은 일은 세가지입니다. 첫 번째 일은, 안정적인 배움터를 만드는 일입니다. 첫 해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는 일이고요, 작지만 안전하고 생태적인 농장을 가꾼지도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교육과정도 해마다 조금씩 다듬어서 다양한 배움과 풍성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성장하지만, 교사들도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고요, 무엇보다 특수교사와 마을샘 사이에 단단한 신뢰가 쌓여가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일은,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마을에 정착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마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배우고, 익히고, 관계 맺고, 자기 자리를 찾아, 제 몫의 일을 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수업 중에도 할 수 만 있다면 마을로 자주 나갔습니다. 일부러 들 길과 마을 길을 걸으며 인사를 하고, 누에농가와 딸기농가를 찾아 견학을 다녔습니다. 3년 전 부턴, 고등부 친구들이 마을 일터에 나가 일주일동안 견습시간을 갖는 활동도 시작하였습니다.

세 번째 일은, 꿈이자라는뜰 농장을 일터로 만드는 일입니다. 학교는 마쳤지만 아직 마을 일터와 연결되지 못했을 때 또는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되돌아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일주일에 나흘 오전을 새 일꾼과 함께 일하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한 달을 꾸준히 일하는 게 어려웠다는 친구가 한 해 농사를 함께 시작하고 끝까지 잘 마쳤답니다. 물론 도중에 일을 그만 두고 싶어 할 때도 있었고, 예상 밖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잘 견뎌냈습니다. 물론 올 해도 계속 함께 일할 예정이고요, 시간과 급여, 인원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아이들은 손톱처럼 자라납니다. 그저 나이가 들어 성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함께 농사를 지어 와서였는지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 아이들은 분명 조금씩 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마침 내일모레 고등부를 창업(졸업)하는 두 친구들에게 앨범을 만들어주려고 사진을 정리하는 중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사진을 고르며 한 장씩 넘겨보고 있자니 마음이 참 좋습니다.

작년 가을, 오후 햇살이 끝내주던 어느 날 꿈이자라는뜰 농장에서 정원음악회를 열었던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무대에 서고, 재주 있는 마을 주민들이 무대에 함께 섰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편하고,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자리한 이웃들로부터 그 날의 감동을 다시 전해 들었을 때, 다시 한번 꿈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초중고 12년 동안 우리 아이들,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할까요?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어떻게 하면 쌓을 수 있을까요? 힘겨운 시간이 왔을 때,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힘을 어떻게 채워 둘 수 있을까요?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마을에서 무슨 일을 하며, 또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재미와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계속 농사를 짓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연 얼마만큼 일하고, 얼마만큼 벌어야 적당한 것일까요? 해마다 조금씩 쌓이는 질문들은 어느새 숲을 이루었습니다. 질문의 숲이 울창해질수록 막막하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알아서 툭툭 떨어지는 열매들, 다시 꼬리를 물고 새로 싹트는 다음 질문들을 마주하는 기쁨이 이 일을 계속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꿈이자라는뜰을 함께 가꾸는 동료들 덕분에, 조용히 받쳐주고 응원해주는 마을 이웃들 덕분에 올 해는 또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내심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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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루는.

동네에서는 털보 또는 보루라고 불리우고요, 충남 홍성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에서 농사와 마을살이를 배우다가 그대로 눌러 앉았습니다. 논농사, 밭농사, 자식농사, 꿈뜰농사, 기록농사를 조금씩 짓고 살고 있습니다. www.greencarefarm.org


* 이 글은 <개똥이네집> 2016년 3월호에 게재한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관찰그림을 그려보자고 하면, 초등때는 줄기차게 좋아하는 애니 캐릭터만 그렸던 G군.

그런데 오늘! 금잔화를 마주하고 앉아 그림을 그리는 (아마도 처음일거에요, 이렇게 꼼꼼하게 관찰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런 변화는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니까요.


6월 29일, 중등 ‎텃밭교실 수업중에 .




난생 처음 보여준 모습에 감동. 그려낸 금잔화에 또 감동 ㅜㅜ



꿈이자라는뜰 인스타그램 @greencarefarm 에는 좀 더 자주 농장 소식이 올라온답니다~


www.instagram.com/greencarefarm

#‎기록농사; 논밭 농사일지 겸 #‎자연관찰일지



  1. 이승희 2016.07.16 04:00 신고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2. 김칠현 2016.09.06 03:16 신고

    1

지난 , 꿈뜰일꾼 보루는 밝맑도서관에서 마련한 <2015 마을기록수집가 양성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과정 중에 봄학기를 마무리하며 정리한 트리트먼트를 공유합니다. 트리트먼트는 원래 영화작업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시놉시스가 전체 윤곽, 대강의 줄거리라면 트리트먼트는 구체적인 사건이 담긴 줄거리를 시퀀스와 씬별로 나누어서 정리한 것을 말합니다. 이 트리트먼트의 각 씬에 지문을 붙이고 대사를 붙이면 시나리오가 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트리트먼트는 구조가 보이는 한편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와 마을기록과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과정을 진행하시는 이영남선생님께서 일단 써보자고 하셔서 써 보았을 뿐입니다^^ 물론 아주 조금 뭔가 감이 잡히기는 하지만, 이거다라고 이야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에 자세한 설명은 이만 생략하겠습니다. 단, 보루가 어쩌다가 꿈이자라는뜰을 시작했고, 어떤 과정을 지나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기에 더 없이 편리하다는 말은 할 수 있겠네요. 일단은 요게 포인트!



<2015 마을기록수집가 양성과정; 꿈이자라는뜰 보루의 트리트먼트>

꿈이자라는뜰의 지난 흐름을 읽어내는 작업을 시작하며.

2015년 봄_마을기록가 양성과정, 보루


Why. ___________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시간은 알아서 흘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요인들 때문에 사람들(또는 단체들)의 역사는 저마다 독특한 흐름을 가지게 된다.‘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다’라는 목표의식이나, ‘어떻게 해야한다’라는 가치들처럼 또렷한 ‘이상과 요구’들은 대체로 드러난 요인들이다. 이런 요인들은 흐름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아직 명확한 말로 표현되지 않고 숨어있는 요인들이 있다. 그렇게 드러나지 않은 요인들은 인간 내면 또는 인간 관계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갈등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입장과 방식의 차이, 개인의 한계와 사회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생기는 문제와 갈등들. 오히려 그런 요인들이야말로 흐름을 독특하게 만들어내는 더 강력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일관된 방향성이 있는 흐름을 유지하고 싶다. 사는대로 생각하기, 생각하는 대로 살기. 그 중간 지점에서 살고 싶다. 살아지는 대로만 살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는대로 살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흐름의 다양한 구성요인들을 발견하고, 정리하고, 다시 읽어보는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걸어왔는지 알고 싶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갈등들과 수많은 갈래길을 마주하게 될 게 분명하다. 그 길 위에서 계속 일관성을 가지고 나아갈 힘을 갖고 싶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힘, 사람이나 가치를 빼먹지 않게(유식하게 이야기하면 소외시키지 않게) 만드는 힘을 갖고 싶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드러나 있는 요인들을 정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드러나 있다고 해서 항상 그 요인을 빠짐없이 살필 수 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선 흐릿하고, 쉽게 드러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구체적인 논의에서 언급되거나, 글로 적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강력하게 흐름의 굴곡을 만들어낸 숨은 요인들을 차근차근 발견해내고 싶다. 시작은 보이는 것부터지만, 결국엔 잘 보이지 않았던 요인들에 더 주목하고 싶다.


드러나지 않았던 흐름의 요인들을 정리해보고 싶지만, 두려움이 있다.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하면 어쩌나, 정작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요인들이 가려져 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완벽함, 완결성에 대한 욕심이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혹시나 이런 요인들이 ‘어떻게’ ‘잘’ ‘해야하는 일’정도에만 머문다면 자칫 의무감만 지워주는 피곤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또 하나의 걱정. 숨겨져 있었던 것은 또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괜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은 아닐까? 갈등을 오히려 키워 버리는 것은 아닐까?


기록에 갇히면 어쩌나, 도그마에 갇히면 어쩌나, 긁어부스럼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넘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지내는 것은 만족스러운가?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동안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잊혀지는 요인들, 사라져버리는 흐름들, 가려지고 소외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 탓에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쓸데없는 도그마에 휘둘리는 것은 또 괜찮은가를 생각해본다. 판도라의 상자. 그 상자는 이미 열려있지 않나? 이미 상자밖으로 어둠과 밝음이 모두 튀어나와 있는데, 어둠은 어둠대로, 밝음은 밝음대로 그리고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것들은 또 그런대로 끌어안고 가야 하지 않을까? 외면한다고 갈등과 문제들이 사라지나? 일단은 어떤 모양인지 온전히 마주해 봐야 덮어둘 것인지 풀고 갈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드러나지 않았던 흐름의 요인들을 발견하고 싶은 두번째 이유를 찾았다. 흐름의 요인들을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흐름과 또 그 흐름을 만들어내는 저마다 각기 다른 요인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요인들이 완전히 다르지 않으며, 각각의 흐름은 또 어느 순간 겹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의 모습을 비추어 숨어있던 요인을 발견하게 도와주기도 한다. 나의 흐름의 요인들 살펴보니 작은 것, 약한 것, 어두운 것, 꼬인 것도 의미가 있더라. 우리의 흐름을 살펴보니 아이, 어른, 노인, 장애인 모두 의미가 있더라. 그래서 괜찮다. 나에게, 서로에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의 흐름들이 드러나고, 연결되면 여럿이 공유하는 조금 더 큰 흐름이 만들어진다. 이 큰 흐름은 ‘우리'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방향성을 유지하며 움직이게 하는 힘.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 주는 힘, 누군가를, 무언가를 소외시키지 않도록 도와주는 힘을 갖게 해준다고 믿는다.


다행이다. 혼자가 아니다. 동무가 있다. 꿈이자라는뜰에서 함께 시간을 이어 온 동료가 있고, 객관적으로 살펴봐달라고 부탁할만한 동무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길잡이가 함께 하고 있다. 빠짐없이 꼼꼼하게 기록을 남겨온 것은 아니지만, 많은 양의 사진과 문서들도 가지고 있다. 수년이 지난 사진을 펼쳐놓고, 사진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을 읽어내려 한다. 그래서 드러나 있던 요인들 그리고 드러나 있지 않았던 요인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발견해내고 싶다. 집중할 시간도 마련하였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꿈이자라는뜰에서 수업하고, 농사짓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리고나서 목요일 저녁, 아카이브 공부시간과 금요일 한나절은 꿈이자라는뜰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으로 가질 예정이다.




How. ___________


2009년 가을에 시작한 꿈이자라는뜰은 비교적 많은 사진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일단 사진을 정리하고 싶다. 사진을 고르다가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으면, 적어보도록 하자. 주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 선생님들의 이야기일게다. 지금까지 글로 적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사진이라는 그물을 통해 모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잡은 이야기들을 주욱 펴 놓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어떤 흐름들이 보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마을기록가양성과정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진들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챙겨 모으다 보면 콜라주처럼 꿈이자라는뜰의 큰 이야기가 들려질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꿈이자라는뜰의 이야기를 먼저 챙겨놓고, 그 이야기를 통해 적절한 사진 기록 분류방식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사진 분류와 정리작업이 다 끝나면 다시 한번 이야기를 다듬겠지만, 기억을 되살려 보루의 꿈뜰 이야기를 먼저 한번 풀어놓도록 한다. 




What. ___________


보루의 꿈이자라는뜰 이야기

꿈이자라는뜰 season1(2009~2015)


Prologue

장애학생을 위한 농업교육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 장애와 관련된 사람들_부모, 교사, 마을교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다. 초중학교 프로젝트 예산으로 시작하지만, 예산이 끝나도, 교장과 교사가 바뀌어도 이 일은 계속되어야한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학교 밖에서, 마을에서 시작해볼까? 그렇다면 지속적으로 이 모임을 꾸려 갈 마을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마을교사들을 지원하고, 학교와 마을교사들을 연결하고, 아이들을 오랫동안 살피고, 결국에 마을과 연결해줄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면 예산을 기약할 수도 없는데, 그 안에 자립을 해내야 하는데, 그런 일을 맡아서 할 사람이 없다. 마을에 꼭 필요한 일, 오랫동안 바라온 일인데 앞날이 불투명한 이 일을 누가 맡아서 할까? 사람이 없다. 어쩌면 좋으나?


1막

A

#1

2009년 가을. 보루는 내년에 전공부 창업을 앞두고 있다. 보루는 농사를 지어 자립을 하고, 마을에 정착해서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 1년전에 홍동으로 아내와 아이, 어머니까지 온 식구를 데리고 내려왔다. 전공부에서의 2년. 어린 아이와 식구들을 챙겨야하고, 학교 수업도 들어야 하고, 농사실습도 해야 한다. 창업을 앞두고 농사일을 배우고 익히기에 바쁘다.


#2

보루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뭔가 잘 가르친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어쨌거나 보루는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풀무전공부 2학년 논농사 과제도 “풍년새우와 햇빛, 아이들과 함께 짓는 논농사”였다. 그래서 논농사를 짓는 동안 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볍씨도 뿌리고, 모내기도 하고, 벼바심(추수)을 진행하기도 했다. 


#3

그러던 9월 어느날, 장애학생들을 위한 농업교육 프로젝트를 맡아보라는 제의를 받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보루는 장애인, 이주민, 노인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우선 농사로 자립을 하고 싶었던 보루는 자신의 계획, 의지를 내려놓고 주어진 일을 받아들여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농사를 지어 자리를 잡을 때쯤, 그러니까 한 20년은 지나야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도 되는 것일까?


B

#4

보루는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전공부 2년의 시간동안 삶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나’의 계획과 의지가 중요한 편이었는데, 이제는 바깥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도 어느정도 맞춰나갈 수 있다면 내 일로 받아들여 보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5

물론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다가 중단되면 아니 시작한만 못하지 않나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일단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자고 생각했다. 앞날은 알 수 없지만, 어려움이 생긴다면 여기 이 마을에서 어떻게든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매우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6

그렇게 시작한 일. 아이들과 함께 농사 짓는 시간이 즐겁다. 늘지 않는 것 같아도 vs 아이들은 손톱만큼 자라고 있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vs 한 해 두 해 몸에 조금씩 새겨서 익히는 것이 보인다. 농업 기술을 익히는 것. 직업교육과정 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이지만, 직업교육 그 이상의 의미가 농사를 함께 짓는 일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2막

C

#7

지난 1년간 꿈이자라는뜰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온 보루는 학교를 통해 급여를 받았다. 그 덕분에 오히려 큰 어려움 없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만약 전공부를 창업하고 바로 농사를 지어 자립을 하려고 시도했다면, 보루는 지난 일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땅도 없고, 밑천도 없고, 고작 2년의 전공부 경험에, 몸도 아직 농사일에 익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8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한 아이들이 한 해 두 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마을교사들도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프로젝트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그것도 내년이면 끝이 난다. 이후에는 어떻게 할까? 보루는 그리고 꿈뜰은 내 년에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농사를 지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일은 가능하고, 유익하며, 필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꿈이자라는뜰을 지켜보던 주변사람들에게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같이 이 활동이 프로젝트가 끝나도 계속되기를 바랐다. 학교의 정식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야 제일 좋겠지만, 아직까지 어느 곳에서도 이런 방식의 특수교육 예산을 책정한 사례가 없었다. 만약 상위교육기관에 이 프로젝트 사업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면 예산을 더 확보할 수 있을까? 


#9

성과를 보여주기에 언론에 노출되는 것만큼 쉬운 일은 또 없다. 하루는 수업시간을 촬영해서 방송에 내보내라는 제의를 받았다. 보루의 머릿속엔 방송촬영을 하다보면 연출이 불가피한 상황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원래부터 안하던 일을 한 것처럼 짜서 찍자고 한 것도 아닌데, 다만 다른 요일의 활동을 앞당겨서 찍자고 한 것 뿐인데, 보루는 그 정도의 연출마저 내키지 않았다. 어쨌거나 아이들을 방송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직접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왠지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거절하였다. 보루의 완고한 고집때문에 어쩌면 안정적인 예산을 확보할 수도 있었을 기회가 물건너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을 부탁하고 지지했던 사람들과도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보루가 너무 딱딱하게 군 것은 아닐까? 예산도 예산이지만 지지하던 사람들을 잃어서 좋을 일도 없는데...


D

#10

해가 바뀌고,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났다. 다행히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발견해 준 특수교사들은 방과후 예산으로 꿈뜰의 교육과정을 지속하기로 한다. 초등, 중등, 고등 방과후 예산이 나오는 출처는 각각 다르지만 학교를 넘나들며 예산을 쓰기로 했다. 초등 예산으로 초중등이 함께 어울림 수업을 하고, 중등 예산으로 중고등이 함께 목공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실 학생들에게 있어선 예산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논의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실은 그만큼 교사들간의 신뢰관계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햇살배움터에서도 부족한 강사비를 보태주었고, 마을일터 인턴쉽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경비도 지원해주었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어든 예산은 마을교사들이 감수하기로 했다. 두 사람분 강사비가 줄어 한 사람분만 나오게 되었지만, 여전히 강사는 두 사람이 하기로 했다. 여기에 마을사람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 조용히 계좌번호를 물어보시고 알아서 만원, 이만원 자동이체를 신청해주시는 이웃 분들이 한분 두분 늘어났다. 어떤 성과도, 결과물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보루는 마치 마을이 챙겨주는 기본소득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덕분에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봄 모종장, 가을 추석장에서도 마을 분들의 호응은 실로 고마웠다. 해마다 일손을 나눠주시고, 씨앗을 나눠주시는 이웃도 계셨다.


#12

아직 한번도 마이너스가 된 적은 없지만, 꿈뜰 재정은 넉넉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기가 어렵고, 뭔가를 시작해도 조마조마한 모험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장애인 일꾼을 고용하거나, 보루의 역할을 나눠 맡을 동료일꾼을 맞아들이기엔 여전히 재정이 부족하다.


E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일꾼을 맞아들이는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수업과 농장을 담당하는 보루가 더 이상 혼자서는 넘치는 농장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정리 J가 파트타임으로 농장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장애에 큰 관심은 없지만, 농사를 짓고 싶은 부분, 매우 적은 보수지만 급여가 안정적인 부분이 서로 맞아떨어졌다.


#14

그러나 보루는 당장의 농사일을 함께 하는 일꾼 이상의 동료가 필요했다. 농사일을 쳐내는 것도 급급하지만, 실은 꿈뜰의 여러 영역중의 한 부분을 나누어 맡아서 일할 사람, 그때 그때 중요한 논의를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1년 정도 함께 일하고 나면 그렇게 J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장애는 그 말만으로도 문턱이 높게 느껴진다. 무언가 장애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만, 특별한 관심이 있어야만 장애 관련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농촌엔 사람이 정말 귀하다. 그러다보니 동료를 만나기가 정말 어렵다. 행여 관심이 깊지 않다 하더라도, 함께 긴 시간을 보내고 일이 익숙해지면 관심이 커질 수도 있지않을까 싶지만, 넉넉하지 못한 재정은 그 기간동안 적절한 보상을 지원해 줄 수가 없었다.


#15

J는 그 다음 해에 일을 그만두었다. 다른 관심사 때문이라고 했지만, 만약에 적절한 급여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함께 일하는 시간이 적었던 것도 마음에 걸린다. 수업을 하러가거나, 다른 일들을 처리하러 돌아다니느라 둘이서 함께 오랜 시간을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급한 농사일을 쳐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료가 되어가는 일에 신경을 더 썼어야했다. 그리고 혹시 보루의 고집스런 어떤 면이 동료를 만드는 일에 장애가 되었던 것은 또 아니었을까? J의 빈자리는 매우 컸다. 이미 J가 합류하기 전에도 농사일이 많았지만, 새로운 동료를 위한 재정 수입을 마련하려고 구정리에 500평 밭을 더 얻어두었기 때문이다. 


F

#16

새학기가 시작되고, 슬슬 모종을 키우기 위해 씨를 넣어야 할 때가 되었다. 보루의 외로움을 잘 알고 지내던 영은이 일에 합류하게 되었고, 영은의 도움으로 영실, 인숙 일꾼이 합류하게 되었다. 그것도 매우 갑작스럽게. 한 달전만해도 한 해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할 지 막막했는데. 덕분에 늘어난 구정리 고요밭 농사도 잘 마칠 수 있었고, 농장도 이전보다 틀이 잡힐 수 있었다.


#17

새로운 수익도 생겨났다. 지난 5년동안 꿈이자라는뜰에서 버텨온 시간들이 그대로 재료가 되었다. 꿈이자라는뜰의 지난 5년간의 수업활동 기록과 전공부 10년의 농사일지 기록을 정리해서 텃밭일지 농사달력을 펴냈다. 아울러 그간의 경험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영은의 도움으로 평생학습센터 지원사업을 받아 장애와 농업 다리놓기 공부모임을 진행하였다. 그 덕분에 예상밖의 수입이 생긴 보루는 일본 의료생협 견학도 다녀오고, 새로운 컴퓨터도 마련할 수 있었다. 시간과 기록의 힘 덕분이었다. 


#18

장애와 농업 다리놓기 공부모임에서는 지난 5년동안 꿈이자라는뜰의 경험에서 길어낸 여섯가지 열쇳말 <교육, 치유, 자립,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산, 김포, 정선 등 먼 곳에서 부모님들과 특수교사들이 공부모임을 찾아와주셨다. 매번 모임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질문이 있다. 장애인이 농사를 지어서 자립을 할 수 있는지, 꿈뜰은 농사를 통해 자립을 하고 있는지, 보루는 어떻게 먹고사는지 매우 궁금해하셨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에 대해선 이렇다할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생산성이 낮은 장애인과 수익성이 낮은 농업이 만났으니 경제적인 자립에 대해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떻게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버텨왔는지가 그렇게 신기하고 궁금하셨던 것 같다. 



3장

G

#19

처음엔 농사를 짓는 것이 전부였다. 목적이었고, 결론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모든 장애 청소년들이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농사를 통해서만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저마다 각자에게 유익한, 다양한 기회들을 농사를 짓는 과정안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것. 농사의 품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발견한다. 목적이나 결론이 아니라, 방식 또는 과정으로서 농업을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재발견한다.


#20

처음엔 농사를 지어 자립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장애청소년이 꿈이자라는뜰 과정을 통해서 나중에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농업기술을 익히고, 취업을 할 만큼 성장을 하고, 결국엔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꿈이자라는뜰도 결국엔 농사로 자립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루도, 교사도, 부모도 처음엔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보루의 눈에 다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 하는 것이 익숙해진 아이들, 자연스러워지고 당연해진 아이들, 한 시간동안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풀매는 일이 익숙해지자, 이제는 김을 매면서 교사와 학생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앞에서 '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뭐가 고민이니'라고 물었을 때는 들을 수 없을 이야기들이었다. 각자의 작은 텃밭에서 주어진 일을 성공해냈을 때는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가 이어졌다. 


#21

무언가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은 힘들고 우울한 시간이 왔을 때,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중에 돈벌기 보다 지금 행복하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발견했다. 치유가 된다는 것은 장애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측정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지금 함께 일을 하고, 수다를 떨고, 행복한 시간을 즐기면서 아주 조금씩 회복탄력성을 저축해나가는 것, 스스로를 다독이고 ‘치유’해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농사를 지으면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H

#22

’비장애인도 힘들어하는 농사일을 우리 아이가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기왕이면 바리스타같이 세련된 일을 하면 좋겠는데...’, ‘학교일자리 급여에 비해 농사를 지어서 받을 수 있는 급여는 얼마나 될래나?’와 같은  인식을 마주하게 되면 기운이 쑥 빠진다. 하지만 그런 인식을 두고 너무 현실적이기만한 인식이라며 탓하기도 어렵다. 

현실에서는 돈벌기와 행복하기 이 둘 중에서 어느게 정답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사정이야 집집마다 다 다르겠지만, 장애가족의 경우 비장애가족보다 생계부담이 더 큰 경우가 많다. 아울러 부모가 없는 미래 어느 시점에서 자식의 삶을 생각하면 뭔가 통장의 잔고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개인의 장애를 개인이, 가족이 책임져야하는 현실에서는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결정권이 부족한 발달장애청소년들의 삶은 부모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꿈이자라는뜰은 그 부모님들과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을까? 적게 벌더라고, 행복하게 농사를 짓자고. 힘들고 지저분하더라도, 농사를 지어야 행복하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하다.


#23

한데 모이는 경우가 적어서 그렇지 발달장애청소년, 학교교사, 부모, 마을교사처럼 꿈이자라는뜰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 사람은 그 수가 꽤 많은 편이다. 그러니 매해마다 들고 나는 사람도 많고, 아직 미처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학교교사와 마을교사, 아이들은 자주 만나다보니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신뢰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하지만 부모님과 만나는 시간은 물리적으로도 많지 않은데다가, 좀처럼 인식의 간격을 좁히기가 어렵게만 느껴진다. 일년에 두세번 정기 부모모임을 하는데, 참석하는 분들은 한두분정도. 최근엔 조금 늘어서 서너분이 오시기도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의미와 가치들을 나누기엔 여전히 막막해 보인다. 장애와 농업을 연결하자, 장애와 마을을 연결하자는 뜻을 품었으나 정작 부모들에게 호응을 얻고 연결되기가 무척 어렵다.


#24

꿈이자라는뜰은 지금까지 아무런 법적인 모양의 조직을 갖추지 못했다. 사회적 기업도 아니고, 비영리단체도 아직 아니다. 여지껏 꿈뜰에게 가장 적합한 틀을 고르느라 시간이 걸렸고, 그 틀을 여럿히 함께 마련하고 싶어서 또 계속 미뤄온 것이다. 장애인과 가족, 이웃 주민, 마을교사와 특수교사가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꺼내 보았지만, 앞으로 한걸음을 내딛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I

#25

꿈이자라는뜰 농장 부지를 임대해준 땅주인이 내년부터는 연세를 올려달라고 한다. 안정적인 농장부지를 마련하는 것은 오랜 숙원이었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서, 운영비를 마련하고, 땅을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도 명확해 졌다. 이 현실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나. 


#26

교사와 주민 몇몇의 도움으로 영농조합을 만들었다(만들예정이다). 부모, 교사, 주민이 함께 축을 이루어 출발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타협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일단  교사와 주민이 먼저 힘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지만, 부모와 당사자의 자리를 최대한 열어놓고 확보하는 노력을 병행하기로 했다. 영농대출과 공동체 토지신탁으로 우리는 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장애인은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하고, 비장애인은 할 수 있는, 필요한 일을 하고. 서로 어울려 인간미를 느끼고,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공간, 함께 살아가는 힘, 어려운 현실을 견디는 힘을 키워주는 공간을 우리는 확보할 수 있을까?


#27

2014년을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의지했던 루시가 마을교사를 그만두었다. 아쉽고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도 농장일꾼으로 일하던 영실과 인숙이 2015년에는 마을교사를 병행하기로 하고, 새로 이담도 동료일꾼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담은 지금껏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꿈뜰에서 일하면서 농장 일도 함께 하고, 수업도 같이 진행하고 있다. 장곡면 가송리에 사는 형욱도 농장일꾼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형욱은 일주일에 4일 오전시간에 함께 일한다. 3월부터 시작했으니 3개월이 지난 6월부터는 급여를 지급했다(할 예정이다). 꿈뜰에서 일하는 모든 농장일꾼과 마을교사는 일의 종류나 장애와 상관없이 오직 일하는 시간의 차이에 따라 수익의 1/n을 활동비로 나누기로 했다. 과연 이 실험은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



Epilogue

오전에 감자밭 김매고, 호박 참외 옮겨 심고, 오후에 어울림 수업하고, 농장에 돌아와 열무 솎고, 시금치 걷고...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담이가 물었다.

“꿈뜰이 원래 이렇게 바쁜가요?”


담이의 물음에 보루는 초점을 제대로 못맞추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그래, 일을 많이 한다고 돈을 많이 버는게 아니었으니, 지금보다 일을 조금 줄인다고 해서 돈이 크게 줄지는 않을거야" 


보루의 엉뚱한 대답에 담이는 현명한 대답으로 방향을 돌려주었다.

“저는 돈을 적게 받아도 괜찮아요. 아니 많이 받으면 오히려 더 힘들어 질 거 같아요.”


이제서야 말귀를 알아들은 보루.

“그래 맞아, 돈도 돈이지만 여유를 가지고 일하는게 더 중요하지. 그나저나 우리는 얼마만큼 일하고 얼마만큼 돈을 벌면 적당할까? 재미와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계속 이 일을 하고 살려면 말이야.”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다음 시즌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을까? 



2015.05.21







* 꿈이자라는뜰 기록물 보관 상자

아직 상자를 다 채우고, 정리하지 못 함. 

2개를 마련해서 현재 밝맑도서관에서 보관중.

박신자선생님, 홍화숙선생님과 함께 나머지 작업을 이어갈 예정


* 분류표와 기술서






꿈뜰_분류표와기술서_2015final.pdf

(수정보완의 여지가 있으며, 최종파일이 아님)

* 꿈이자라는뜰 사람들의 연대기

어느 해에 어떤 선생님과 어떤 학생들이 함께 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만든 표.

(이 자료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공개를 생략합니다)


꿈이자라는뜰 사진책

2009~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한 해에 한 권씩, 사진기록 정리체계에 따라 사진책을 만들 예정임


* 졸업생들을 위한 사진책

꿈이자라는뜰을 시작한 2009년부터 저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꿈뜰을 떠나는 시점까지,

"다양하고 풍성한 추억을 불러일으켜줄 사진들, 외롭고 울적한 마음을 따뜻하게 덮혀줄 이야기들을 모아 전달하자"는 것이

마을기록수집가양성과정을 수료하면서 생각한 우리 꿈뜰만의 기록물 활용법이었습니다.


+ 만드는 방식(계획):

가제: 우리가 함께 한 멋진 순간들

Heart_우선 좋아보이는 사진들에 heart 체크

Best Cut_그 해,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장 멋진 순간들

Mise en scène_이야기거리를 읽어낼 수 있는 사진들

그 외에 누락된 꿈뜰의 주요 활동이 담긴 사진들


+ 만드는 방식(실제):

1. 2009년부터 2014년까지 19,433장의 사진을 모으고 추려서,

2. 얼굴인식 기능으로 사람마다 3~4백장씩 사진을 분류하고,

3. 변화의 흐름과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다시 한번 추려서 80장을 고른 다음

4. 그 중에서도 한 해의 가장 멋진 순간 한두장씩은 더 크게(5x7) 뽑고

5. 나머지는 보통 크기(D4)로 뽑아서

6. 20장(80매분) 앨범에 한장씩 순서대로 정성껏 붙여서

7. 지난 2월 4일 풀무학교 고등부 창업식에서 두명의 친구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두 친구가 가끔씩 이 앨범을 꺼내보면서 즐거워할 수 있기를, 도스토예프스키 할배(?)의 이야기처럼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라고요, 미처 앨범을 만들어주지 못한 이전 해의 친구들에게도 하루빨리 작업해서 앨범을 전해줄 예정입니다. 꿈이자라는뜰의 기록을 위해서 한 권씩 사본을 만들어 보관해두었습니다.








* 마을기록수집가 양성과정에 대한 (보루의) 매우 개인적인 기록경험



+ 나레이션_마을기록수집가 기록경험 이야기

더보기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어머니께서 일평생 호미를 잡고 사셨기에 이런 말씀을 남겨주실 수 있지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도, 아이들도 농사를 짓는동안 비슷한 경험을 하고, 같은 고백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이렇게 편지를, 기록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님.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 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농사를 지으며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들

_<꿈이자라는뜰> 사례를 바탕으로, 꿈이자라는뜰 보루 최문철, 2014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보통 몸에 병이 나지 않으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으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아프면, 그것도 많이 아프면, 그제서야 병원을 찾고 큰 돈을 들이기 시작한다. 미리미리 적은 돈과 노력을 들여서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고, 땀흘려 일 하고, 종종 운동을 하고, 가끔 여행을 가고 하는 일에 신경을 쓰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기왕에 같은 돈과 노력을 들일 것이라면, 건강할 때, 평소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왜 병원에 다니고 나서야 시작하는 것일까?

요새 사람들은 참으로 건강해 보인다. 부족함없이 풍요롭게 잘먹고, 잘 입고, 따뜻하고 배부르게 사니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요즘 세상에 영양실조로 굶어죽는 사람을 볼 일은 없지만 아토피와 알레르기, 각종 암, 불임과 유산을 비롯해 이전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희귀한 병명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소식을 종종 듣는다. 뉴스에서 뿐만 아니라 가까이 지내는 이웃들의 이런저런 아픈 소식을 자주 접하다보니 이제는 정말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건강해 보이는 덩치가 실제로는 건강한 몸이 아니었던 것이고, 마음과 인간관계를 자세히 들여다 보자면 더더욱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통계는 일부러라도 외면하고 싶을 지경이다.

몸과 마음과 관계가 모두 건강해야 비로소 건강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안녕치 못한 생활환경, 사회제도, 정치경제적인 상황 속에서 개인의 건강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지속적으로 개인의 건강을 지켜내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한편 온전히 건강한 개인과 완벽하게 건강한 사회는 이제껏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건강을 이야기할 때, 몸의 건강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들도 같은 무게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온전하지 못한 개인의 상태와 안녕치 못한 사회의 상황을 견디고 바꿔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또는 키우고 있다면 이는 또한 역설적으로 건강한 것이 아닐까하는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바로 농사와 엮어서 말이다. 

몸, 마음, 관계가 건강해지는 일과 농사짓는 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회제도, 정치경제적인 상황과 같은 국가적인 차원의 이야기는 일단 뒤로 미루어 두더라도, 마을이라는 작은 사회안에서 건강한 생활환경을 만들어가는 일과 농사를 짓는 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일찍이 권정생선생님은 농사를 지으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남겨주셨다. 그중에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아픈 지적을 남겨주셨기에 일부를 옮겨왔다.


아이들은 시인이라는데 그 아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는 슬픈 현실은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생겨나는가. 아이들이 시인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아이들을 시인이 되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다. 엄니의 젖을 먹으면서 새소리를 듣고 흰 구름을 보고 별을 바라보며, 그리고 짐승들과 벌레들과 어울려 땀 흘리는 고통을 배우고 따뜻한 생명들과 살을 비비는 삶이 있어야 한다. 봄날의 비릿한 풋내와 작은 꽃들도 알아야 하고, 여름날의 소낙비와 무지개와 지루한 장맛비도 알아야 한다. 비지땀을 흘리며 들판에서 일하는 삶의 현장도 배우고, 고통의 대가로 얻어지는 가을의 풍성함, 겨울의 추위와 그 추위를 이겨 내는 생명들의 힘찬 인내도 체험해야 한다. 시인은 절대로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우리 아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기계에서 해방시키고 콘크리트 벽 속에서 풀려나게 해야 한다. 흙냄새, 거름냄새, 풀냄새를 맡게 하고 새들과 짐승들과 얘기를 하도록 하자. 쾡이질을 하고 지게를 지며 땀 흘리는 농군이 되게 하자. 그래서 시인으로 살게 하자. 똑같은 것을 흉내만 내는 인간이 되어 일생을 시체로 살게 버려두는 건 죄악이다. 조금은 가난하고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아이들을 시인으로 키우고 생명 가진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 
... 기계적인 감각에서 손의 감각과 대자연의 감각으로 뻗어 나가면 결국 하늘을 발견하고 그러면서 아이들도 하늘이 된다. 겨울의 눈보라와 여름의 비바람을 헤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건강한 인간이 마음 따뜻한 시인이 될 수 있다. 

_시를 잃어버린 아이들, 권정생, <<빌뱅이 언덕>> p160~162 (원글은 <시와 사회> 1993)


권정생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시인'이자 '농부'는 맨처음에 이야기했던 '건강한 사람'과 가장 잘 들어맞는 존재이다. 그런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 자연과 농사일, 농촌마을 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사전적의미로 발달장애는 '신체, 정서, 지능 따위가 성장하거나 성숙해야 하는데,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결함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기존의 잣대로 보자면, 발달장애인은 몸과 마음과 관계가 건강한 사람이 아닌 셈이다.(물론 비장애인 역시 앞서 이야기한 잣대로 보자면, 건강한 사람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장애때문에 성장과 성숙, 치유가 상대적으로 더디고 어려울뿐, 아예 불가능한 존재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꾸준히 농사를 지으며 매우 천천히, 느리지만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 꿈뜰 아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해 온마을이 함께 가꾸어가는 농촌형 배움터와 일터

<꿈이자라는뜰>의 시작

2004년 즈음, 홍동중학교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나와 풀무전공부에서 산책도 하고, 마을주민교사와 함께 원예활동을 하던 것이 처음 시작이었다. 이 활동이 매년 이어지면서 정기적인 방과 후 수업이 되었고, 초등학교 학생들도 참여하는 원예활동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다가 2009년에 홍동초등학교와 홍동중학교가 진행한 전원학교 사업 중에, 이전에 해오던 원예활동을 바탕삼아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위한 직업교육과정>을 만들었다. 이 교육과정의 이름을 '꿈이자라는뜰'로 부드럽게 다듬고, 이제는  홍동초등학교, 홍동중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학생들이 매주 정기적으로 마을 주민교사들과 만나는 배움터로 자리를 잡았다. 

 

꿈이자라는뜰의 농업교육활동

꽃밭교실은 초등학생, 꽃나무교실은 중학생, 나농교실은 고등학생을 위한 농업교실이다. 봄가을학기가 시작되면 수업시간을 배정해서 매주마다 2시간씩 학교밖으로 나와 텃밭과 농장에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한다. 농사일 외에도 목공과 풍물, 어울림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2013년의 경우 초중고등학생 15명과 마을주민교사 7명, 초중고등학교 특수교사와 특수실무원 5명이 꿈이자라는뜰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함께 어울렸다. 어쩔 수 없는 초중고등학교 특수교사의 변동말고는, 나머지 구성원들은 그동안 큰 변화없이 5년째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초중고 12년동안 꾸준히 농사일을 하는 것,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 마을 주민교사들과 함께 길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발도르프학교에서 또래 그룹이 오랫동안 함께 배움을 이어가고, 같은 교사와 어울려 지내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특수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주민교사는 시간의 힘에 의지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과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해 가고 있다. 아이들끼리도 교실과 책상앞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다양할 수 밖에 없는 텃밭에서의 경험과 추억을 공유하며 남다른 또래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꽃밭교실, 꽃나무교실, 나농교실은 꿈이자라는뜰 농장 텃밭에서 꽃과 채소와 허브를 기르는 농사를 짓는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해서 직접 요리를 해 먹거나, 허브차나 메리골드 손수건과 같은 가공품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한다. 주로 꿈이자라는뜰 농장, 풀무학교 전공부 텃밭, 풀무학교 고등부 온실등에서 활동을 한다. 가끔은 지역 딸기농장에 초대를 받아 딸기를 실컷 따먹고 오는 날도 있고, 누에치는 집에 견학을 가기도 한다. 꾸준히 학교 밖으로 나와 마을 여기저기와 관계를 맺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장애와 농업

농사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농사일은 눈, 귀, 코, 입, 살갗-오감으로 느끼고,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다. 손, 발을 써서 때로는 힘 있게, 때로는 정교하게 온 몸을 움직여 도구와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수시로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일을 찾아 하거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일이다. 혼자서 일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럿이 어울려 함께 일을 한다. 장애인은 이중 한 두 가지 이상의 영역에서 작지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다고 장애인은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단정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농업을 '몸에 익히는 교육', '자립을 위한 직업', '조화롭게 하는 치유'의 과정으로 <장애와 농업>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홁을 만지며 땀을 흘리고, 어울려 일하는 것을 몸에 익히는 것, 일을 하며 살아가는 힘을 키워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만 장애 때문에 그 과정이 어렵고 더디기는 하겠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인이 농사를 지으면서 몸과 마음과 관계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을 돕는 일은 매우 유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량적인 평가가 어렵지만, 지난 4년 동안 꾸준히 아이들을 지켜본 주민교사들과 특수교사들, 부모들은 이점에 대해 미약하나마 분명한 심증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의 질적, 양적연구가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꿈이자라는뜰을 시작하고 5년을 채워간다. 비록 일주일에 한번씩 두 시간을 만나는 만남이었지만, 5년이라는 짧지않은 시간동안 주민교사와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깊이를 더해왔다. 서로에게 익숙하고 편안해지면서, 새로운 마음의 문들이 조금씩 열리는 것이 보인다. 처음엔 농사일을 같이 해보는 정도의 관계였지만, 이제는 김을 매면서 실컷 수다를 떨고, 그 사이에 간간히 비치는 속사정을 살피고, 외롭고 아픈 부분들을 다독여주는 사이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을 차곡차곡 함께 쌓아갈수록 우리가 서로에게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너무도 멀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 때도 있다. 

건강하지 못한 자신의 상태와 안녕치 못한 주변의 상황을 견뎌내는 힘, 이 힘을 평소에 길러두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힘을 가진 사람은, 비록 장애가 있다할지라도 오히려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이 힘은 어떤 것들일까? 이제까지 꿈이자라는뜰의 경험에서 발견한 힘은 바로 앞에서 이야기 한 '풍요로운 추억'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이다. 지난 4년은 지금 또는 언젠가 겪게 될 지루하고 때로는 어려운 일상을 버텨나가는데 필요한 추억과 친구들을 마련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의 시간들도 그 연장선에 있다. 

꿈이자라는뜰의 농교육은 농업기술을 아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농사일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도록 익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농작물을 많이 수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억이나 친구와 같은 보이지 않는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몸과 마음과 관계가 고루 성장하도록 다양한 농적 자극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농업은 몸을 위한 양식은 물론 마음을 위한 양식도 함께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통로라고 생각한다. 농업은 건강한 친구들을 길러내는 농사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서

꿈이자라는뜰 농장의 텃밭은 대부분 틀두둑으로 만들어져 있다. 나무로 만든 네모난 틀두둑은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 두둑이 무너질 염려가 없어서 항상 밭모양이 유지된다. 자연스럽게 구분되는 통로를 이용하다보니 밭을 망가뜨릴 염려가 적다. 일반두둑보다 높이가 있어서 물 빠짐이 좋고, 작업을 하기도 좋다. 나무틀에 손을 짚거나 몸을 기댈 수도 있다. 나무틀에 턱이 있어서 흙을 덮어 놓은 나뭇잎이 쉽게 쓸려가지 않아 좋고, 그 덕분에 풀이 덜나게 할 수 있다. 단점이 있다면 어느 정도 비용이 필요하고, 미리 누군가가 틀을 만들어 앉히는 수고를 해두어야 한다는 것 뿐이다. 

틀두둑을 설치하고 세 해 동안 사용하면서 느낀 점은 이 방식이 농사일을 하는데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의 부족한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메꿔 줄 수 있는 훌륭한 보완책이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틀두둑은 장애인이 농사짓기에 매우 유용한 방식이다. 하지만 틀두둑은 장애인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방식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도, 노인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농업방식인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는 개념이 있다. 장애의 유무나 연령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제품,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디자인으로, 보편적 디자인,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이라고도 한다.

농사일을 배우는 것, 함께 하는 것은 장애인에게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단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농사를 짓는 일은 발달장애인, 지체장애인, 정신장애인 뿐만아니라 학령기의 아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건강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농사는 그 자체가 유니버설 디자인이기도 하고, 조금 더 유니버설 디자인의 의미를 살리는 노력을 꾀한다면 건강치 못한 개인들에게나, 안녕치 못한 사회 모두에게 큰 치유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장애와 마을

지금까지는 농사를 지으며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제부터는 마을이라는 작은 사회안에서 건강한 생활환경을 만들어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이 부분도 원래는 농사와 연결하여 풀어보려고 했지만, 장애와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보다 직접적인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이것도 꿈이자라는뜰의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꿈이자라는뜰의 모든 현재 활동과 앞으로의 활동은 당연히 농촌공동체가 가장 적절한 바탕임을 밝혀둔다.

나는 우리마을 발달장애청소년들이 꿈이자라는뜰 안에서만 배우고, 꿈이자라는뜰 농장에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여러 곳곳에서 배우고,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많이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마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배우고, 익히고, 관계 맺고, 자기 자리를 찾아서, 제 몫의 일을 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를 졸업한 장애인이 마을일터에 취직해서,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고, 일터에 걸어 나가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일상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자연스럽고 풍요로운 일상을 만들어내는 일에 국가 또는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겠지만, 이것은 다른 누구보다 가까이 사는 마을 이웃들에게 가장 먼저 열려있는 몫이다. 우리 마을 아이들을 위해 건강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은 마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면서, 동시에 함께 누려야 할 열매이다.  

장애인에게 안녕치 못한 생활환경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일은, 비단 장애인에게만이 아니라 마을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일임에 틀림없다. 장애를 배려하는 생활환경은 대부분의 경우에 노인과 유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이로운 환경이다. 쉬운 예로 보행로에 턱을 없애고 경사로를 만들어 놓으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우리동네 아기 엄마들과 할머니들이 더 반기실 게 분명하다. 발달장애청소년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다듬어져 쌓인 꿈이자라는뜰의 농생태교육활동은 비장애청소년들을 위한 농생태교육이 확산되는 일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장애 청소년을 마을이 품는 일의 연장선은 비장애 청소년을 마을이 품고 정착시키는 일로 자연스럽게 연결 될 것이다. 

살기 좋은 마을, 건강한 사회구조를 만드는 일에 장애는 독특한 역할을 한다. 시작점이 되기도 하고,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그냥 지나치고 넘어가기 쉬운 부분들을 세심하게 다시 살펴보게 만든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뿐만아니라, 내면의 문제들, 관계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일에도 도움을 준다. 장애를 가진이와 마주하다보면,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장애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타인의 장애를 마주하고, 이해하고, 돌보는 사이에 본인의 장애를 발견하고 다독일 수 있는 힘이 자연스럽게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이들이 오히려 장애인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고백을 종종 듣는다. 


이야기를 마치며.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속을 들여다보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고, 아프지 않은 사회가 없다. 아울러 누구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마다의 크고 작은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병이나 장애의 유무를 가지고 건강을 따지는 것은 실은 무의미한 일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그것은 아프기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아파도 견디고 살아 낼 수 있는 힘을 키우며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금 이 마을에서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십수년이 지나고 난 후에, 우리가 이 마을에서 서로 친구가 되어, 이웃이 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참말로 건강하고 좋겠다.


이 글은 한티재 출판사에서 2014년에 펴낸
『마을공화국의 꿈, 홍동마을 이야기』에 실린
꿈이자라는뜰 이야기입니다.



  1. 남태제 2014.08.21 20:15 신고

    문철씨, 잘 읽었어요. 글로 정리해서 공유하니 좋네요. 제가 참여하고 있는 두레뉴스에도 올려도 될까요?

    • 여름울 2014.08.22 14:50 신고

      네, 괜찮습니다. 출처만 잘 밝혀주세요~ 얼굴이 나오는 사진도 될 수 있으면 작게 해주시고요. 근데 좀 쑥스럽네요 ㅎ

  2. 이은우 2014.08.21 20:45 신고

    아~ 참 좋네요 뭐랄까 꿈만 꿀것 같던 희망이 눈앞에서 날 유혹허는듯..^^
    잘나지 않아도 인정 받으려고 발버둥치치 않아도 그냥 내가 무언가를 할 수있다는 마음과 몸짓으로도 나는 아주 가치있는 사람 행복하고 넉넉한 사람이 있는 곳을 꿈꾸죠
    내마음이 원하는데로 춤추고 노래하는 것 평가되어지기 이전에 그 기쁨에 함께 풍덩 빠질 수있는 그런 곳...꿈뜰이라면 가능할거라 믿어봅니다
    크면 클 수록 욕심이... 이건만은
    경계해야겠죠 ^^♥

    • 여름울 2014.08.22 15:03 신고

      오래전에 어느 장애청년들로부터 제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한적이 있어요. 그렇게 사랑받고 환대받는 경험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버텼었지요. 실은 그래서 이 일을 계속 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누구보다 제가 그런 곳을 가장 원하고 있으니까요.
      선생님이 가까이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첫번째 사진을 찍을 때처럼요. ^^



아이와 어떻게 가까워질지 모르겠다면 그냥 아이 근처에 자주 머무세요. 감시하려고, 잔소리하려고 있지 말고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세요. 게임을 어떻게 하나 궁금하다며 들여다보세요. 애착을 만드는 첫번째 열쇠, 근접성입니다. 가까이 머물면 정이 듭니다. @suhcs


_꿈이자라는뜰 마을샘들, 이웃들과 글귀를 공유하고 싶어서 서천석(@suhcs)님 트윗에서 인용해왔습니다. 마을이라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 안에서 마을샘들이 우리 아이들과 가까이 그리고 아주 오래동안 함께 머무를 수 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애를 長愛로 바꿔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지요? ^^


"선생님, 사람이 같이 오래 있으면요, 서로의 마음을 알 수가 있대요."

카모마일 꽃을 수확하는 일을 함께 하던 호수가 저에게 해준 이야기랍니다. 호수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다시 한번 되새겨주네요. 참 기특하지요^^ 한쪽에서는 민수와 기선샘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한창 피우고 있네요. 물론 두 손은 바쁘게 일하면서이지요. 참, 보기 좋습니다. 우리 이렇게 오래오래 같이 일하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고맙고, 행복합니다.


2012.5.29 

어제 저녁, 권정생선생님이 쓰신 이야기중에 <길 아저씨 손 아저씨> 라는 제목의 동화책을 집어 읽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래윗 마을에 사는 다리가 불편한 길 아저씨와 눈이 보이지 않는 손아저씨가 만나, 서로 의지하고 더불어 일하면서 즐겁게 살아간다는 내용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짧은 이야기를 읽는 동안 '그래 맞아, 바로 이거야!'라는 혼잣말이 절로 새나왔습니다. 머지않은 날에 이 동화 속 이야기를 우리 마을에서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짧은 이야기에 적지않은 격려와 희망을 전해 받았습니다. 역시 권정생선생님이십니다. 고마워요, 선생님!

따로 허락을 받지 않아도, 선생님께서는 크게 뭐라하시지 않으실 거란 생각에 이야기 글에 일부를 아래에 옮겨놓았습니다. 글로만 읽어도 좋지만, 책을 사거나 때때로 도서관에 가서 그림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이야기 책이랍니다. 완전 강추!




(전략)

"할머니, 좀 힘드시겠지만 저를 윗마을 길이한테 데려다 주시겠어요?"

"거기에 무엇 하게?"

"무언가 서로 도울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둘 다 불편한 몸인데 무얼 어떻게 돕겠다는거야."

할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선뜻 손 아저씨의 손을 잡고

윗마을 길 아저씨네 집에 데려다 줬어요.

길 아저씨는 손 아저씨를 반갑게 맞았어요.

서로가 어려운 형편이니 마음이 금세 통한 것이지요.

"여보게. 우리 서로 도와 가면서 살도록 하세."

손 아저씨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길 아저씨를 향해  웃었어요.

"하지만 나는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겠나."

"걱정말게나. 다행히 나는 앞을 못보지만 이렇게 두 어깨가 튼튼하니까 내가 자네를 업고 다니겠네."

길 아저씨는 금세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그날 부터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는 함께 한 몸처럼 살게 되었지요.

길 아저씨는 손  아저씨 등에 업혀 길을 잘 이끌어 주고

손 아저씨는 길 아저씨를 등에 업고 어디든 잘 걸어 다녔으니까요.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는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구걸을 했어요.

이따금 어느 집에서 일감을 주면 새끼도 꼬고 짚신도 삼았어요. 둘은 부지런히 일했어요.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세월이 많이 흘렀어요.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는 점점 솜씨가 늘어 온갖 물건을 만들었어요.

집 안에서 지게도 다듬고, 바소쿠리와 봉테기도 만들고, 멍석도 짜고,깨끗한 돗자리도 엮었어요.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도 이제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아저씨네 집에 물건을 사러 왔어요.

꼼꼼하고 솜씨 좋은 아저씨네 물건을 모두 좋아했어요.

(하략)


권정생, <길 아저씨 손 아저씨>, 국민서관, 2006



오늘 꽃밭교실(초중) 수업이 원래 화전부쳐먹기였는데, 봄나물 효소 담그기로 바꾸었다가 막상 오늘 비가 와서 꽃모종 옮겨심기로 바꿔서 진행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작은 트레이에서 꽃모종을 다치지 않고 잘 빼 낼 수 있을까? 폿트에 옮겨심으면서 흙으로 꽃모종을 다 덮어버리지는 않을까? 처음엔 염려가 되었지만, 곧 쓸데없는 염려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아주 가끔 폿트에 흙이 부족하게 담기거나 모종 뿌리가 흙 위로 살짝 드러난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다시 손을 댄 경우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관찰력이나 손놀림이 의외로 섬세하다는 것을 발견할 때면, 잠깐이지만 '의외'라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꽃모종 옮겨심는 일이 싫타며, 작업이 끝난 폿트를 옮기는 일을 하고싶다는 원찬이에게 하던 일을 조금만 더 하고 일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근데 어느새 자기 맘대로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폿트를 옮기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둬야하나, 아니면 하기 싫은 일이라도 조금 더 하게 해야 하나,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을 혼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원찬이와 단 둘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니 좀 엄하게 이야기를 했으니 혼을 낸 셈이었습니다. 얼굴 표정이 잔뜩 얼어붙어서 말을 못 잇고, 일부러 눈을 안 맞추려는 모습을 보니 제법 많이 무서웠나봅니다. 꽃모종을 딱 하나 만 더 옮겨심고, 그 다음부터 폿트 나르는 일로 바꿔서 하자고 합의하고 잘 마무리지었지만 왠지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저녁에 큰 아이가 엄마 말 아빠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혼이 났습니다.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두 대를 맞고는 엉엉 울었습니다. 볼기를 맞은 아이도 많이 아프겠지만, 때린 아빠 마음도 엏제나 그렇듯이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쌓아놓은 끈끈한 관계가 있고, 또 앞으로도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보듬어 갈 시간이 있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그러면서 오후에 원찬이를 혼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여름이의 경우엔 그동안 함께 지내온 오랜 시간과 관계가 있었지만, 원찬이의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마음이 찜찜했었나봅니다. 당분간은 원찬이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도 그렇고, 무섭게 혼을 내야 할 때는 또 혼을 내야 하겠지만 그전에 조금이라도 더 애정어린 신뢰의 관계를 쌓아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무섭게 혼낼 때, 내가 의도한 만큼의 강도와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강도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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