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자라는뜰의 멀지않은 미래가 쿠바의 어제와 겹쳐지네요. 역시 쿠바입니다.
유럽가서 캠프힐 찍고, 캐나다가서 프로비던스팜 찍고, 쿠바에 들렀다가, 꿈뜰에 돌아오면 세계일주 끝~

참, 신기합니다. 꿈뜰이 지향하는 좋은 모델들이 세계 구석구석에서 먼저 길을 닦아놓고 있는 것도 그렇고,
점점 더 닮고 싶은 모델 순서대로 차근차근 눈에 들어오는 것도 그렇구요.

봄비가 내리더니, 봄이 오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곧 꿈이자라는뜰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홍동 여기저기서 들리겠지요?

그래요, 올 한해도 즐겁게 웃으면서 고고씽~


<세계 - 쿠바 장애정책, 교육-일-삶 조화>
글: 유용복 특수학교 교사 / 사진: 월간 <노동세상>/ 2008.04.29
출처: 월간노동세상( http://laborworld.co.kr/v2/2326 )

쿠바 여행 일정표를 받았을 때 장애인학교 및 농장견학이 소개돼 있는 비고란에 ‘다운증후군’이라고 쓰여 있어 과연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장애인 교육시설은 어떨까 하는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여행  시작했다. 여행을 안내하시는 분은 내가 특수학교 교사며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하자, 기대를 하고 와도 좋을 거라고 하셨다.
여행이 시작되고 닷새째가 되는 날 아침, 드디어 장애인학교로 출발했다. 차에서 내려 발을 내딛는 순간, 들어가는 입구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것이 마치 어떤 농장이나 공원을 들어서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운 나라인 만큼 길 양쪽에는 나무가 푸르고 길게 늘어서 있다.


다운증후군 학교 ‘Hogar Castellana(오가르 까스떼야나)’ 학교 팻말이 입구에 커다랗게 서 있다.

우리에게 친절하게 학교 설명과 소개를 해 준  로베르또 교장 대리.

학교 팻말에는 ‘Hogar Castellana(오가르 까스떼야나)’라고 쓰여 있고 책 그림과 뇌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학교를 책임지고 계신 로베르또 노보아 선생님의 학교에 대한 소개가 시작됐다. 원래 교장으로 재직하고 계시던 분은 여자 선생님인데 잠시 베네수엘라에 특수교육을 지원하러 가셨고, 지금은 로베르또 선생님이 임시로 교장 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혁명 이전의 쿠바에는 별도의 장애인 학교가 없었고, 개인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혁명 이후 혁명정부가 쿠바 국민의 교육에 관심을 돌리고, 문맹퇴치 운동 등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62년부터 지체장애인 특별교육부서가 생겼다. 
이 학교는 원래는 일반병원이었으나 63년부터 증후군 등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탈바꿈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다운증후군 같은 중증 장애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63년~67년까지의 단계에서는 중증 장애인들을 수용하고 돌보아 주는 수준이었다. 
67년에 유럽사회주의 나라에 유학했던 학생들이 돌아왔고, 그 중 특수 장애 분야를 전공했던 학생이었던 에멜리아(현 교장)가 교장으로 일하게 된다. 그 때부터 전문적인 증후군 연구 및 교육 사업을 진행했고,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2001년도부터는 쿠바 보건부에서 장애인에 대한 전국적 조사사업과 함께 장애와 관련한 유전학적 연구, 장애인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에 대한 역학조사 등을 병행하면서 큰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장애문제를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한다.

교실 입구에서부터 우리와 다른 그들만의 교육체계를 엿볼 수 있었다. 학교 교육의 목적은 스페인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과 자립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교육은 우리나라의 학년 개념과는 달리 6살∼18살까지의 학생을 장애 정도나 교육 능력에 따라 1∼7등급으로 나누고 각자의 수준에 맞는 무학년제 수준별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학교입구 벽에는 학생들이 함께 제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학교 안에는 기숙사, 세탁소, 의무실, 농장 등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현재 교육 받고 있는 학생은 62명이고 교사 12명에 보조교사, 의사 3명, 간호사 22명(24시간 교대), 심리치료사, 물리치료사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또한 7급 이상의 과정을 수료한 100여명의 장애인들이 학교 내의 유기농장, 수예품 공장, 학교 세탁소, 식당 등에서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교사와 보조교사만 있는 우리의 특수학교 체제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교육은 장애 정도에 따라 기간과 수준이 정해지며 스스로 자립하여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지금까지 이곳을 졸업한 3만 여명의 학생들은 농장이나 수공업 등의 분야에서 일을 하며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
기숙사에는 18세 이상의 남자 110명이 기숙하고 있고 분야별 전문가들이 도움을 준다. 오전 8시∼오후 4시까지 교육을 받거나 일을 하고, 4시 이후에는 텔레비전 시청, 장기, 오락 등 자유 시간을 가진다. 학부모들의 모임도 분야별, 수준별 만남의 시간이 있어 서로 상담을 하며 도움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입학은 학부모 면담으로 할 수도 있고, 의사진단이나 보건부 혹은 그 소속 주의 심사를 받아 이뤄질 수도 있다. 
쿠바 정부는 전체 인구 1천 2백만 명을 다 조사해 장애인구 1.25%, 즉 14만 명을 전부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특수학교는 장애영역별로 전국에 401개가 있어서 지역별, 연령별 구분에 따라 장애인 100%를 다 수용한다. 우리와 방문한 학교와 같이 큰 규모는 전국 14개 중에 36개가 있고, 교육과 직업, 재활이 다 이뤄진다.

직업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 내 작업실. 여기서 생산된 상품들은 별도로 판매된다.

오가르 까스떼야나만 보더라도 면적이 5ha, 즉 1만 5천 평 규모로 학교와 각급 시설, 농장 등이 모두 한 울타리 내에 있다. 농장에서는 이곳에서 필요한 야채를 유기농으로 키워서 전부 자급자족해 해결한다고 한다. 
1만 5천 평이라면 정말 대단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쿠바의 경제적 조건이 어렵기 때문에 시설 면에서는 조금 낙후되어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심리치료, 재활교육, 예능교육, 직업교육 등 충실한 교육을 하고 있었다.

로베르또 선생님의 안내로 학교 안을 돌아보았다. 교실뿐만 아니라 직업교육을 진행하는 작업실(분야별로 책상에 둘러 앉아 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사포로 문질러 악기를 만들거나 접시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농장 등을 둘러보았다. 다른 한 편에는 완성된 작품들이 진열돼 있고 그 작품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방문 기념으로 받은 여러 색깔과 모양의 인형들은 그들의 정성이 묻어나는 고마운 선물이었다.


학생들이 정성껏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 곳에서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예능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이어서 외국 손님인 우리를 위한 공연이 시작됐다. 아름다운 다운증후군 아가씨가 멋진 드레스를 입고 나와 춤을 추고, 자폐나 정서 영역의 장애를 가진 청년들이 오르간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학생들의 연극과 여러 가지 공연은 선생님들이 장애 정도에 맞춰 교육한 결과였다. 예를 들어 오르간 건반에는 음계에 따라 여러 가지 색 테이프를 붙여 열심히 연습해 멋진 연주 솜씨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평생 여기서 교육받고 생활하며 직업을 갖고 살 수 있다고 한다.
통역과 전문성 문제 등으로 충분하게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교사와 학생들의 눈빛을 통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나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여서 어차피 교육과 의료가 다 무상이기 때문에 국가 정책 상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특수교육을 하고 대부분의 시설들이 정부지원으로 운영되는 것은 우리나라도 쿠바와 마찬가지인데, 개인이든 단체든 그룹 홈, 보호 작업장(자립장, 근로사업장) 등이 있고 적지 않은 장애인 단체가 있는데, 왜 우리나라의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고충은 끝이 없을까? 당장 며칠 후면 우리 학교도 졸업식이 있는데, 부모님들은 “졸업 다음날부터 우리 아이를 어디에 보내야 하나요?”라며 답답해하고 한탄을 하지 않는가?

나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면 나라의 예산도 잘 쓰여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특수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장애인들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장애 학생들은 특수학교에 다니는 동안 돈도 거의 들지 않고 안전을 보장받지만 학령기가 끝나면 갈 곳이 없거나 아니면 그 때부터 평생 돈을 주고 시설에 맡겨야 한다. 학교에서 직업을 알선 한다 해도 적응이 어렵고 최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의 직종이 대부분이다. 특수교육을 하더라도 그 교육의 효과를 사회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학교는 교육기관이니까 교육에만 주력 하고, 시설은 좀 더 깨끗하고 나은 시설을 만드는 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돼 가고 있다. 기업은 법률에 따라 생색내기 식으로 장애인 고용을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은 시설별로 특성화 사업이다 뭐다 하면서 ‘폼 나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지만, 과연 장애 자녀를 둔 가정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 장애 학생들은 졸업 후 다시 순서를 기다려 복지관에 문을 두드려야 하고, 어렵사리 선발 되어도 연한 제한에 묶여 1, 2년이 지나면 또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보호 작업장’이라는 곳도 장애 영역별로 다르게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개인단체들이 만든 실정이다 보니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부모들은 장애 자녀들이 나이가 들어가면 그 때부터 전국의 시설들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받아 줄 곳이 있는지, 부모가 죽고도 맡아줄 곳이 있는지, 한 달 생활비는 얼마를 내야 하는지, 시설은 좋은지 등등 따져보면 보낼만한 시설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런 대책 없이 장애 자녀를 집에 데리고 살거나 그냥 방치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 부모들의 아픔을 긴 세월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나로서는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이 많은 여행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