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자라는뜰 2009 ~ 2019

꿈이자라는뜰을 시작한 이유, 가능성의 바탕, 예상했던 여러가지 어려움과 기대했던 해법들, 예상 밖의 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장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꿈뜰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만들어 둔 것이지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꿈이자라는뜰이지나온길20191115.pdf
0.13MB

꿈이자라는뜰의 질문

사회적농업 육성법이 발의되어 통과를 앞둔 시점입니다. 과연 이 질문들이 누군가에게 가 닿을지도 모르겠고 또 도움이 되기나 할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다 사회적농업의 모델로 회자되곤 하는 꿈이자라는뜰의 일꾼으로서 제 나름의 문제 인식과 질문, 제안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사회적농업 육성법을 제정하기엔 아직 이른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업, 농민, 농촌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난제들에 대하여 더 많은 논의와 수긍할만한 대답들이 마련되고 나서야, 또는 그 대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농업 육성법이 제정되는 것이어야 할텐데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이번에 꼭 법을 제정해야 한다면, '사회적농업 육성법'이 아니라 '사회적농장 지원법'이라고 이름 짓는 것이 보다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에 답을 주실 분들이 계실까요? 또는 질문을 다듬어주실 분들이 계실까요? 또는 아예 네가 잘못 알고 있는거야. 진짜 현실을 알려주마! 하는 분들이 계실까요? 아무쪼록 계시면 좋겠습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다 읽어주실 분도 손에 꼽을거라고 예상합니다만^^) 

 

그림파일과 같은 내용을 PDF와 텍스트로 덧붙입니다.


사회적농업육성법에 대한 꿈이자라는뜰 보루의 질문.pdf
0.23MB

+ 꿈이자라는뜰의 시작(2009)

농촌의 흔한 일, 농업을 장애인 교육과 자립의 바탕으로 삼아보자
농사짓기가 교육, 자립,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겠네. 마을 안에서는 더욱 유의미해
발달장애청소년을 위한 교육농장, 장애와함께 일하는 돌봄농장

0. 어쩌다 사회적 농업 
 - 사회적이라는 말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통용되고 있을까?
 - 한정된 인식, 정립되지 않은 틀에 갖히고 싶지 않아
 - 우리는 사회적농장일까? 일단 ‘사회적’ 간판을 달지 않고 가던 길을 그냥 가겠어. 하지만 판을 만들기 위해 질문과 실천을 나누고 싶어

질문1. 농업과 사회적농업
 - 농업의 다원적인 기능 / 다면적인 은혜는 충분히 가치있다고 인정받고 있는가?
 - 자연과 사람, 사회를 이롭게 하는 기존의 노력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고 있는가?
 - 생산과 수익보다 사회적가치를 우선하여 병행한다 하였을 때 생존이 가능할 수 있을까?
 - 농업의 생산성은 나아졌지만, 수익성은 여전히 낮고, 땅값은 비싸도 너무 비싸.

질문2. 농민과 사회적농업
 - 사회적농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반사회적인 농민인가? (사회적협동조합이 아닌 협동조합들은 사회적이지 않은가?)
 - 자식 먹이듯, 건강하게 농사지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자연과 사람, 사회에 이로운 농사를 짓는 사람들로서 존중받고 있는가?
 - 농민이 교육, 치유, 돌봄, 고용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있나?

질문3. 농촌과 사회적농업
 - 농촌은 사회적인 가치가 충만한가? 공동체적인가?
 - 농촌이 더 큰 단위의 사회, 새로운 구성원 또는 손님을 넉넉히 포용 할수 있을까?
 - 착취 구조의 맨 밑바닥에 있는 농촌에서 사회 문제들까지 해결하라고?
 - 곡간에서 인심난다는데 곡간이 비었네.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
 - 농촌, 노인 자살률 1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정말로? 그러려면 전제가 필요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자유로운, 자립적인 인간 + 외부의 간섭이나 착취가 없는, 서로 돕고 보살피는 관계
 - 돈, 독일까 득일까?: 돈 때문에 의상하고 쪼개지는 마을 만들기 사업들 / 을(이 되어 버리는 구조도 이상하지만, 을)이 되어도 고유성,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 그냥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지. 농민협동기금도 좋고.

질문4. 사회적기업과 사회적농업
 - 수익과 가치, 두마리 토끼 > 처음부터 불가능한 설계는 아니었을까?
 - 학교 교사에게 따로 돈 벌어서 아이들 잘 가르치라고 하는 셈
 - 지원이 끊기면 망하는 사회적 기업들. 같은 방식이라면 사회적 농장은 어떻게 될까?
 - 사회적책임, 잘 나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도 다른 이야기

5. 우선순위(꿈뜰, 보루의 제안)
 - 의식의 공유: 소외된 농민과 농촌이 포용되는 것이 먼저
 - 인식의 변화: 장애인과 노인이 살기 좋으면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
 - 연구사업: 질적 도약을 위한 준비. 해외 모델 수입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국내환경에서의 임상연구
 - 법제화: 교육, 돌봄, 복지 전문가가 농업, 농민, 농촌과 연결될 수 있도록 > 기존의 법과 제도를 손보는 것부터
 - 양적팽창: 양적팽창은 가장 나중에 / 지원사업은 세심하게 / 경쟁을 시키지 않는, 협력관계를 만드는

6. 꿈뜰의 따뜻한 시도
 - 미련한 실천: 돈보다 사람(가까운 동료들을 의지하기, 마을 이웃기관과 협동하기) / 일단 살아남기(욕심을 버리겠다, 너무 많은 가치, 훌륭한 가치도 포기)
 - 지원도 받을거야: 마을 이웃들의 도움은 언제나 든든해 / 토지기금도 시작해야지 / 최저임금, 4대보험도 언젠가는 / 일자리안정자금, 장애인고용지원
 - 진짜 3농혁신을 기다립니다: 협동조합 / 토지개혁 / 기본소득

 

작성_꿈이자라는뜰 , 충남 홍성, 대표일꾼 최문철 20190718
보완_20191115

 

 

 

 

2017년 6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꿈이자라는뜰 농장의 변화를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팔괘리에서 운월리로 농장을 옮기고, 돌봄농장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지요. 저희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농장을 만들어가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상업적인 이용이나, 초상권을 해치는 사용은 원하지 않습니다.)

꿈뜰이 돌봄농장을 만들어가는 원칙은 두가지입니다. 1. 생태적인, 아름다운, 안전한, 효율적인 농장  2.남녀노소 + 장애인이 접근하기 쉬운 농장. 이런 농장의 모습은 다름아닌, 퍼머컬쳐 디자인과 유니버설 디자인이 잘 적용된 농장의 모습이겠지요. 앞으로도 끊임없이 농장을 새롭게 구상하고, 직접 만들고 보완하는 과정이 계속 이어질텐데요, 이 실험이 계속될 수 있도록 따뜻한 응원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질문과 조언도 환영합니다. 

사진이 매우 많습니다. 기본적으론 날짜순으로 사진을 배열하였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다소 순서를 조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멀리서 본 모습(파노라마 사진)으로 긴 시간을 짧게 돌려보면 이렇습니다. 

꿈뜰이 이사오기 전에는, 풀무전공부의 밀밭이었습니다.

밀을 수확하고 난 자리에, 여름내내 무성했던 풀을 깍고, 창고 텐트와 사무실을 앉혔습니다.

왼쪽부터 야외 임시화장실, 비닐하우스, 부엌과 데크가 앉은 모습입니다. 아래쪽 초록 밭은 밀밭이고, 위쪽 빈밭은 텃밭을 앉힐 자리입니다.

왼쪽부터 허브정원, 텃밭교실, 부엌정원, 꽃밭이 새롭게 만들어졌고, 부엌데크 오른쪽으로 생태화장실을, 왼쪽으로 휠체어 경사로와 파고라를 설치한 모습입니다.

부엌데크 차광망을 치우고 비가림 천장을 올렸습니다. 사진엔 안나왔지만 왼쪽 허브정원에 오서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그네를 설치했습니다. 사무실에 그늘을 지우려고 올린 까치콩(흑편두)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아, 이날은 꿈이자라는뜰 허브데이 <모두의 정원>이 열린 날이었지요.




이제, 자세한 모습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의 양이 매우 많습니다.


  1. 토야 2018.12.26 05:33

    그물코 출판사에서 출판하던 “2018 텃밭일지 농사달력”이 여기서 엮은 거라서 연락해요~
    2019년도 엮으시면 to-ya@naver.com으로 메일부탁드려요~

    • 여름울 2019.01.15 17:00 신고

      지난 해 가을, 그물코 출판사 사정으로 2019년 <텃밭일지 농사달력> 다이어리판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언제 나오는지 물어봐주시고, 기다려주신 분들께 고맙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학생들을 위한 판형을 만들 것인지 살피는 중이니 곧 소식 전하겠습니다.

  2. 퐈더 2019.04.02 21:12 신고

    잘보아습니다

귀농통문과 프레시안(2016.10.14)에 실렸던 꿈이자라는뜰 대표일꾼 보루의 인터뷰기사입니다. 

이영민(마음행동연구소 모모 대표)님이 인터뷰와 글을 적어주셨습니다. 

-----------------------------------------------------------------------------

발달장애 청소년, '농적 자극'을 만나다

[귀농통문] 돌봄농장 '꿈이자라는뜰'

이영민 마음행동연구소 모모 대표


남쪽에서는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예보가 있던 7월 어느 여름날. 발달장애 청소년과 함께 가꾸는 농장 '꿈이자라는뜰(꿈뜰)'의 하우스에서 나온 보루(꿈뜰 대표, 본명 최문철)의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다 같이 점심을 만들어 먹는 자리가 예약되어 있어 귀농통문 편집위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황토로 지은 오두막 옆 탁자에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동안 노래와 단팥, 가이는 예약된 점심 준비와 작물 돌보기를 하는 듯하다. 조용조용, 차분히 각자의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기운이 전해져 온다.

풀무학교 전공부 2년을 채워갈 무렵에 지역의 특수학교 교사에게서 제안을 받아 처음 발달장애 학생들과 농장을 꾸리기로 한 것이 2009년의 일이다. 유기농, 마을생협, 의료생협, 풀무학교, 전공부가 잘 자리 잡고 있는 충남 홍성이라는 마을이어서 가능했을 거라는 짐작이 든다. 제안하고, 교육과정을 짜고 1년도 채 안 되어 농장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배움터와 일터 '꿈뜰' 입구. Ⓒ전국귀농운동본부


보루는 원래 서울에서 이주 노동자를 돕는 일을 하며 주말에는 장애 청소년들을 만났다고 한다. 풀무학교 전공부에 들어오기 전까지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의욕에 가득 찬 청년이었다고. 무엇이든 충분히 준비해서 나누는 것이 세상을 사는 의미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이주 노동자를 '돕는다는 것'이 어느 순간 그들이 자립하는 길을 막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자신이 여건을 만들고 그들은 그 혜택을 입으니 알게 모르게 눈치를 보는 것도 같고 무엇보다, 그들 스스로 세상에 우뚝 서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단다. 전공부에서 공부를 할 때까지도, 주고받음이 자연스럽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이 무언가를 제대로 준비한 후에 주고, 그다음 받는 것이 당연했다고 한다.

"자의식이 팽배했던 때"라고 스스로 규정지은 그 시기를 지나, 보루는 '꿈뜰'을 만들기 위해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을 진행하며 '먼저' 도움을 받고 이후에 나눌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몸으로 배우는 것은 확실히 머리로 배우는 것과는 다르다.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그 경험의 강렬함이 때로 한 사람의 인생과 더불어 그와 인연을 맺은 이들의 삶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곤 한다. 보루의 지난 7년이 그랬나 보다.

지나온 시간과 지금 하는 일들을 차분히 이야기하는 그는, 무엇보다 오감으로 경험하는 농사일이 다른 이들보다 여러 걸음 늦게 자라는 발달장애 청소년들에게, 금방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기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마음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근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오는 장애학생들이 농장을 이용하는 시간은 각각 일주일에 두 시간씩이다. 각자 자신의 이름표가 걸린 텃밭을 가꾸며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일지를 쓰는 시간. 만화 캐릭터만 열심히 그리며 농사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던 친구가 어느 날 문득 금잔화를 그렸을 때, 자신의 수확물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며 즐거워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꿈뜰'에서 이루어지는 배움과 성장에 대해 들어봤다.

▲ 꿈뜰 대표를 맡고 있는 보루(본명 최문철). Ⓒ전국귀농운동본부


- 아이들이 농장에 와서 늘 같은 일만 반복하나요? 농사는 시작과 마무리가 있는 과정인데 그것을 다 같이 하나요?

겨울에 빈 밭에서 시작해서 빈 밭으로 돌아갈 때까지 모든 과정을 합니다. 갈고 심고 거두고 돌보고 가공을 하거나 중간 중간 요리해서 같이 먹기도 하죠. 지난주에는 감자 채를 썰어서 같이 요리해 먹기도 했고, 봄에는 쌈채나 이런 것들 나오면 샌드위치 해서 먹기도 하고. 아이들이 많이 겪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재작년 가을 읍내에 가서 아이들과 배추전이랑 깻잎전을 했는데, 여중 2학년 학생이 처음 칼을 잡고 요리를 하고 튀김을 만들었습니다. 마중 나온 엄마한테 먹여주면서 "엄마, 나 이거 집에 가서 또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칼을 안 쥐여 주거나 요리를 안 시키거나 하지만 위험하더라도 필요한 일, 하다못해 라면을 끓이거나 파라도 썰거나 계란 프라이라도 스스로 해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모험이기는 한데 스스로 할 기회를 주기 위해 모른 척하고 툭 던져서 맡기거나 하면 잘합니다. 아직 위험한 상황은 없었어요. 스스로 조심하니까요. 내 텃밭에 서 길러 먹고 하면, 많이 하는 얘기지만 안 먹던 건데 먹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따서 먹는 게 맛있고, 집에 가져가서 칭찬도 듣고 자랑도 하고 선생님께 선물도 하는 경험이 아이들한테는 좋은 일입니다.

- 비장애 아동도 그렇긴 한데, 어린아이들은 빨리 변화하는 게 보이고 부모들도 고마워하지만, 아이들이 고등학생 정도 되면 부모도 자녀가 거의 안 바뀐다고 생각하는 등의 편차가 있을 텐데요

한해 한해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부분이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일주일에 두 시간이 전부입니다. 집과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영향받는 부분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하는 부분도 있고, 퇴화하는 경우도 있어요. 갑자기 이야기를 잘하던 친구가 어느 날은 주변을 배회하는 등의 일이 생기기도 하고. 

일주일 중 짧은 시간, 수많은 사람 중의 작은 만남이기 때문에 좋은 자극을 주고받고 싶고 성장하는 걸 많이 도와주고 싶지만 한계라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교사가 아무리 잘해도 49퍼센트를 넘기기 어렵고 부모는 아무리 못해도 51퍼센트를 넘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래도 감이 오는 부분, 이 부분에서 아이들에게 의미 있을 것이라고 내가 판단하게 되거나 아이들 모습에서 보이거나 하면 고맙습니다.

▲ 매주 한 번씩 방문해 돌보는 아이들의 텃밭. Ⓒ전국귀농운동본부


- 아이들에게 의미 있다고 보는 것은 무엇인가요?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굉장히 다양한 자극을 받습니다. 오감 자극. 힘을 쓰고 참고 견디고 대화하고 물어보고, 이런 것들이 사람이 사회생활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이잖아요. 돈 버는 농업, 성공하는 농업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한 인간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자극을 받는 과정, 통로라고 생각하면 농사만큼 생생하고 다양한 자극을 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자극을 계속 주고받고 싶고 아이들이 노크하듯이, 사람의 근육이나 신경은 자극을 주지 않으면 퇴화하고 자꾸 쓰면 성장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느린 거예요.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고 더 유용한 자극을 찾아내야 하는데 쉽지 않지만 시간을 들여서 공들여서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좋은 농적(農的) 자극을 많이 만나게 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그런 자극들이 아이들 내면에 잘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기록농사입니다. 일지 쓴 지 3년째인데, 첫해에는 수업하고 어떻게 일하는 게 잘하는 것인지 계속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수업을 한 것도 중요하지만, 수업을 하고 나서 그것을 다시 돌이키면서 '서사'로 어떤 일을 했는지 적어보고 묘사하면서 농작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고 자기의 느낌이나 감정을 들여다보거나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텃밭이 줄 수 있는 이런저런 감각, 인식 그런 것들을 기록으로 다시 한 번 남기게 하고,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인식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단순히 지식을 쌓게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배우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관찰하고 파악하고 어떻게 하는지 고민하는 것. 그 과정에서 재미나 성장을 맛보거나,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런 것을 알게 하거나 자발적인 동력이 생기게 도와주고 싶어요.

세 번째는 아이들과 농사를 짓다 보면 손이 익숙해져 손으로 일하다가 수다를 떨어요. 김매다가 수다 떨고 캐모마일 따면서 수다 떨다 보면 속 얘기, 하고 싶은 얘기, 선생님한테 부탁도 하게 되죠. 상담실에서 하는 이야기보다 편한 자리에서 편하게 얘기하는 게 깊숙이 다가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같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거나 좋은 기억을 쌓아 놓는 게 중요합니다. 자폐는 30대에 우울증 겪는 일이 많다고 해요. 비장애든 장애든 어쨌거나 살다 보면 힘든 일 많잖아요. 외롭거나 절망스럽거나 우울하거나 그럴 때 여기서 같이 웃고 떠들었던 재미난 기억들이 버틸 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텃밭에서 자기가 잘 일구어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성공하고 돌보고 했던 경험이나 친구들과 여기서 웃고 떠들었던 경험이나 같이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던 이야기나 그런 추억들이 지금 당장 학교생활을 아이들이 버티는 데 필요하고 나중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생생한 자극들을 몸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내면에 쌓이는 작업 중에서 중간에 기록하게 하고. 그 기록들을 시간이 가면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찾고 있습니다.

- '기록 농사'란 무엇인가요?

재작년 '텃밭일지'를 처음 만들어 아이들과 써보니 너무 좋았어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지만 먼저 구슬 서 말이 있어야겠지요. 구슬 서 말을 모으는 작업이 첫 번째. 아이들과 4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관심 두고, 관찰하고, 관계 살피고, 적절한 시점에 관여하는 과정이 배움의 과정이자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는 방법입니다. 

원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라 후루룩 지나가는데, 우리 아이들은 관심을 두지 못하거나 관찰을 못 하거나 관계성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언제 개입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거나 이런 부분들 각각에서 어려움을 겪는 게 보입니다. 그 부분을 잘할 수 있도록 텃밭에서 농사를 지을 때도 "심어" "적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다 심고나면 일부러 어떻게 달라졌는지 물어보고, 덜 익은 토마토와 잘 익은 토마토를 맛보게 하고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찾게 하고, 변화되는 과정을 계속 살필 수 있게 도와주지요. 내가 금잔화를 기록한 것 같지만 금잔화를 기록했다는 것이 자기한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거나, 금잔화에 대한 그림이나 사진을 다시 봤을 때 다른 감흥을 느끼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요.

학생과 텃밭, 사람과 작물이 있으면 이 사이에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관찰을 하고 관계를 살피고 어떻게 해줄지를 고민하는 게 농사 과정입니다. 생태학교에서는 관찰을 중요시합니다. 여기에 텃밭 농사가 그보다 한 발 더 나간 것은 관여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를 줄 수 있는데, 변화에 기여한다는 것은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어떨 때 잘 되고 어떨 때 안 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것을 물어보는 게 중요합니다.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 왜 잘 됐는지 토마토가 터졌으면 왜 터졌는지 이야기하거나 살피거나 머릿속에서 죽 되새겨서 하기 어려우니까 계속 적어서 찾을 수 있게 하는 거죠.

3월부터 10월까지 텃밭의 변화를 적어놓지 않으면 읽어내기 힘들어요. 그런 것들을 하도록 도와주고 기록을 남겨놓으면 시간이 지났을 때는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데, 농부의 기록은 기억을 '재배'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아요. 지배의 개념이 아니라 재배의 개념으로 보면 농사도 '내가 땅을 관리한다' 또는 '정복한다'는 게 아니라, 땅을 잘 돌봐서 좋은 땅을 만들고 좋은 씨앗을 받아서 새로 쓰고 작물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처럼 내 머릿속 기억도 기록해서 농사를 짓는다는 개념이 기록 농사입니다.

좋은 기록을 남기고 좋은 기록을 고르고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엇을 하는 것이 육종입니다. 아이들도 농부도 주변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농사지어야 하고 토질과 기후가 다 다르니 교과서나 무슨 농법을 따르는 게 실은 큰 의미가 없어요.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거기서 새로운 것을 챙겨나가야 하죠. 일단 농부가 농사를 잘 짓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힘, 성장하는 힘을 갖기 위해서 기록이 중요합니다. 인식을 확장하거나 자기 스스로 지식, 정보를 찾아내고 만들어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농부들도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기 힘든 이 세상에서 농사를 짓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기록농사를 하면 기록을 남기고 계속 꺼내보는 과정에서 의미, 에너지, 힘을 받기 수월할 것입니다. 일지에는 작물에 대한 것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 작물의 변화, 날씨, 사건, 사연을 기록하고 연결합니다.

▲ '꿈뜰'에서 보낸 몇 년간의 모습들을 담아 사진 앨범으로 만들어 졸업할 때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전국귀농운동본부


- 한계를 가장 크게 느껴질 때는 언제인가요?

'이 아이가 얼마큼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을까?' '내가 얼마만큼 밀고 당길 수 있을까?' 이걸 알 수 없잖아요. 아프다고 하면 '참고 해보자'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 참을 수 있는 정도를 모를 때 막막하지요. 또 한 가지는 잘 자라고 취직까지 돼서 정말 잘 다니던 안전하고 좋은 직장을, 부모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마는 상황,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부모님과 신뢰감을 쌓은 관계여서 부모님이 내게 한마디라도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을 때가 안타깝지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제일 막막합니다.

농업이 구조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것도 막막하고요. 농사만으로는 자립해서 살기 어렵다거나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기 어렵다거나 하는 상황들과 맞닥뜨릴 때 힘들지요.

- 본인의 비전은?

지금 이대로 살았으면, 이대로 계속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있을 때 힘을 얻기도 하고, 탈진하기도 하지만 그런 생활들을 버티면서 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른 데서 무언가를 소비해서 하기보다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채울 수 있는 에너지를 찾아냈으면, 그게 농사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 스스로 농사지으면서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록농사를 짓는 것을 중요하다고 스스로 배워가는 과정에 있으니까 아이들이 기록농사를 지으면서 성장하고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나 버티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나 자신도 먼저 그것을 입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농사짓는 것, 아이들 돌보는 것, 가르치는 것 이런 과정들, 내 안에서도 기록을 남기고 갈무리하고 다듬고 해서 개인적으로는 내 삶의 동력을 스스로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이 된다면 누군가에게 그 기록이 쓸모 있으면 좋겠어요. 농사도 나에게 의미 있다는 게 무척 중요한데 가능하다면 아이들이든 또 다른 누군가에게든 의미 있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은 개인적으로 농사짓는 것이나 기록농사가 스스로에게 의미 있고 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보루의 정체성'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그냥 농부입니다. 자연이든 다른 사람에게든 해를 덜 끼치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원래 농부는 그런 거잖아요.

-----------------------------------------------------------------------------

귀농통문과 프레시안(2016.10.14)에 실렸던 꿈이자라는뜰 대표일꾼 보루의 인터뷰기사입니다. 

이영민(마음행동연구소 모모 대표)님이 인터뷰와 글을 적어주셨습니다. 

프레시안 주소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2610#09T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