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가서 캠프힐 찍고, 캐나다가서 프로비던스팜 찍고, 쿠바에 들렀다가, 꿈뜰에 돌아오면 세계일주 끝~
참, 신기합니다. 꿈뜰이 지향하는 좋은 모델들이 세계 구석구석에서 먼저 길을 닦아놓고 있는 것도 그렇고,
점점 더 닮고 싶은 모델 순서대로 차근차근 눈에 들어오는 것도 그렇구요.
봄비가 내리더니, 봄이 오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곧 꿈이자라는뜰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홍동 여기저기서 들리겠지요?
그래요, 올 한해도 즐겁게 웃으면서 고고씽~
<세계 - 쿠바 장애정책, 교육-일-삶 조화>
글: 유용복 특수학교 교사 / 사진: 월간 <노동세상>/ 2008.04.29
쿠바 여행 일정표를 받았을 때 장애인학교 및 농장견학이 소개돼 있는 비고란에 ‘다운증후군’이라고 쓰여 있어 과연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장애인 교육시설은 어떨까 하는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여행 시작했다. 여행을 안내하시는 분은 내가 특수학교 교사며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하자, 기대를 하고 와도 좋을 거라고 하셨다.
여행이 시작되고 닷새째가 되는 날 아침, 드디어 장애인학교로 출발했다. 차에서 내려 발을 내딛는 순간, 들어가는 입구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것이 마치 어떤 농장이나 공원을 들어서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운 나라인 만큼 길 양쪽에는 나무가 푸르고 길게 늘어서 있다.


혁명 이전의 쿠바에는 별도의 장애인 학교가 없었고, 개인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혁명 이후 혁명정부가 쿠바 국민의 교육에 관심을 돌리고, 문맹퇴치 운동 등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62년부터 지체장애인 특별교육부서가 생겼다.
이 학교는 원래는 일반병원이었으나 63년부터 증후군 등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탈바꿈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다운증후군 같은 중증 장애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63년~67년까지의 단계에서는 중증 장애인들을 수용하고 돌보아 주는 수준이었다.
67년에 유럽사회주의 나라에 유학했던 학생들이 돌아왔고, 그 중 특수 장애 분야를 전공했던 학생이었던 에멜리아(현 교장)가 교장으로 일하게 된다. 그 때부터 전문적인 증후군 연구 및 교육 사업을 진행했고,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2001년도부터는 쿠바 보건부에서 장애인에 대한 전국적 조사사업과 함께 장애와 관련한 유전학적 연구, 장애인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에 대한 역학조사 등을 병행하면서 큰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장애문제를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교육 받고 있는 학생은 62명이고 교사 12명에 보조교사, 의사 3명, 간호사 22명(24시간 교대), 심리치료사, 물리치료사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또한 7급 이상의 과정을 수료한 100여명의 장애인들이 학교 내의 유기농장, 수예품 공장, 학교 세탁소, 식당 등에서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교사와 보조교사만 있는 우리의 특수학교 체제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교육은 장애 정도에 따라 기간과 수준이 정해지며 스스로 자립하여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지금까지 이곳을 졸업한 3만 여명의 학생들은 농장이나 수공업 등의 분야에서 일을 하며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
기숙사에는 18세 이상의 남자 110명이 기숙하고 있고 분야별 전문가들이 도움을 준다. 오전 8시∼오후 4시까지 교육을 받거나 일을 하고, 4시 이후에는 텔레비전 시청, 장기, 오락 등 자유 시간을 가진다. 학부모들의 모임도 분야별, 수준별 만남의 시간이 있어 서로 상담을 하며 도움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입학은 학부모 면담으로 할 수도 있고, 의사진단이나 보건부 혹은 그 소속 주의 심사를 받아 이뤄질 수도 있다.
쿠바 정부는 전체 인구 1천 2백만 명을 다 조사해 장애인구 1.25%, 즉 14만 명을 전부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특수학교는 장애영역별로 전국에 401개가 있어서 지역별, 연령별 구분에 따라 장애인 100%를 다 수용한다. 우리와 방문한 학교와 같이 큰 규모는 전국 14개 중에 36개가 있고, 교육과 직업, 재활이 다 이뤄진다.


1만 5천 평이라면 정말 대단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쿠바의 경제적 조건이 어렵기 때문에 시설 면에서는 조금 낙후되어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심리치료, 재활교육, 예능교육, 직업교육 등 충실한 교육을 하고 있었다.


특수교육을 하고 대부분의 시설들이 정부지원으로 운영되는 것은 우리나라도 쿠바와 마찬가지인데, 개인이든 단체든 그룹 홈, 보호 작업장(자립장, 근로사업장) 등이 있고 적지 않은 장애인 단체가 있는데, 왜 우리나라의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고충은 끝이 없을까? 당장 며칠 후면 우리 학교도 졸업식이 있는데, 부모님들은 “졸업 다음날부터 우리 아이를 어디에 보내야 하나요?”라며 답답해하고 한탄을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 장애 학생들은 특수학교에 다니는 동안 돈도 거의 들지 않고 안전을 보장받지만 학령기가 끝나면 갈 곳이 없거나 아니면 그 때부터 평생 돈을 주고 시설에 맡겨야 한다. 학교에서 직업을 알선 한다 해도 적응이 어렵고 최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의 직종이 대부분이다. 특수교육을 하더라도 그 교육의 효과를 사회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학교는 교육기관이니까 교육에만 주력 하고, 시설은 좀 더 깨끗하고 나은 시설을 만드는 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돼 가고 있다. 기업은 법률에 따라 생색내기 식으로 장애인 고용을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은 시설별로 특성화 사업이다 뭐다 하면서 ‘폼 나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지만, 과연 장애 자녀를 둔 가정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 장애 학생들은 졸업 후 다시 순서를 기다려 복지관에 문을 두드려야 하고, 어렵사리 선발 되어도 연한 제한에 묶여 1, 2년이 지나면 또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보호 작업장’이라는 곳도 장애 영역별로 다르게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개인단체들이 만든 실정이다 보니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부모들은 장애 자녀들이 나이가 들어가면 그 때부터 전국의 시설들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받아 줄 곳이 있는지, 부모가 죽고도 맡아줄 곳이 있는지, 한 달 생활비는 얼마를 내야 하는지, 시설은 좋은지 등등 따져보면 보낼만한 시설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런 대책 없이 장애 자녀를 집에 데리고 살거나 그냥 방치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 부모들의 아픔을 긴 세월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나로서는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이 많은 여행이었다.
